구원을 바라지만 절망에 남겨진 죄인들의 삶을 플레이하다
폭력성 vs 명작
Rockstar Studio의 대표작 GTA(Grand Theft Auto) 시리즈는 폭력적인 플레이 방식으로 유명하다. 폭행과 차량절도는 기본이며, 총기나 무기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경찰과 대치하며 법질서를 파괴하며, 경찰 추격을 따돌리는 쾌감을 불러 일으키도 한다. 물론 플레이어 스스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굳이 폭력적이지 않아도 충분히 플레이가 가능하긴 하다) 그래서 GTA라 하면 폭력게임의 대명사처럼 불려왔다. 그러나
게임을 하다 보면 등장하는 캐릭터의 인생스토리를 통해, 그들이 왜 지금 이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고, 어떻게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 행복한 인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지에 몰입하게 된다. 어느 순간 폭력성보다 게임의 짙은 스토리라인에 집중케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번 리뷰의 대상인 Red Dead Redemption 2(이후 ‘레데리2’로 줄이기로 함)역시, 첫 인상은 강한 폭력성이었다. 시대만 바뀌었을 뿐 GTA를 반복한 것 같은… 그러나 GTA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하다보면, 어느새 너무도 리얼한 폭력성을 넘어, 주인공의 인생과 결정, (그리고 게임의 제목처럼) 피와 죽음과 구원에 대한 문제들을 놓고 고민하는 단계에 이른다. 내용을 세심하게 따라간 플레이어라면, 게임을 넘어서는 각 인물의 감동적인 인생사를 만나게 된다.
18세 이상의 게임 등급을 받고 2018년 10월 플레이스테이션 4에서 처음 발매된 후 2021년 7월까지 3,800만장의 판매를 기록한 레데리2. 이제 우리는 이 게임의 인기요인과 장단점, 기독교적 관점에서 게임이 말하는 구속(Redemption)의 의미를 살펴보려고 한다.
도망자의 헛된 꿈 ‘한 탕!’
먼저 레데리2의 오프닝은 도망자가 된 ‘반 더 린드 갱단’의 여정에서 시작된다. 블랙워터에서 큰 건을 한 탕 했지만, 모든 재산을 두고 도망칠 수 밖에 없던 이들 갱단은 점점 더 동쪽을 향해 나아간다. 이를 배경으로 한 1899년은 무법자시대에서 이제 법이 작동하는 시대가 되었다. 미국서부시대가 끝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동부로 이동한 도망자들은 마을 주변에 정착해 생활하지만, 갱단 리더 ‘반 더 린드’는 한탕의 꿈을 버리지 못한다. 모두를 위해 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한 탕으로 모두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생각이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주인공인 ‘아서’는, 이 생각을 쫓아 도둑이 되기도 하고, 강도가 되기도 하며, 가짜보완관이 되기도 하고, 살인자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한탕의 시도가 더 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양떼를 훔쳐서 팔려는 사이, 다들 도적들이 나타나 총질을 하는 바람에 결국 이사해야 했다. 앙숙인 집안 간에 싸움을 일으켜 이들재산을 삼킬 궁리를 하지만, 결국 무일푼의 도망자 신세가 될 뿐이다. 은행을 터는 데 성공하지만 경찰에 쫓기는 도망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늘 한 탕의 꿈은 실패로 끝난다.
주인공 ‘아서’는 원래 정직하게 일을 해서 해결을 하려고 했지만, 모두가 먹고 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매번 ‘마지막 한 탕’에 함께 하는데, 이것은 그를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도망자의 삶, 피를 흘려야 살 수 있는 갱단에서 벗어나 밝은 세계로 나가기 위한 마지막 한탕을 꿈꾸지만, 결국 어둠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인생의 갈림길
레데리2가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서’의 플레이 방향에 따라 점수가 쌓인다: 도둑질을 하거나, 가축을 죽이고, 강도질을 하며, 시체를 훼손하는 등의 이상한 짓을 하면 마이너스로 가며, 반대로 캠프장에서 짐을 나르거나 낯선 사람을 돕고, 낚시한 물고기를 풀어주면 점수가 올라가 다양한 혜택을 보기도 한다. 주요 미션도 선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떤 결정을 하는가에 따라 최악의 악당이나 인기있는 선인으로 살아 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물론 스토리 전개상 범죄행위에 계속 가담하지만, 유저는 캐릭터의 인생을 좀더 악하게, 혹은 좀 더 도덕적으로 바꿀 선택지가 있다.
우리 역시 더 악한 사람이 되는 결정이나, 이기적인 결정을 하기도 한다. 자기 인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 볼 수도 있다. 게임에서는 강아지를 쓰다듬는 정도의 작은 일도 자부심을 주는 점수로 환산되기에, 게임은 인생이 선택에 달렸다는 메시지를 은연 중에 전달한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여도 결국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를 주인공은 마주하게 된다는 점이다. 나아지려는 시도 역시, 인생을 바꾸는 한 탕의 유혹때문에, ‘아서’는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마치 스스로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세상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 것처럼, 인생은 늘 그렇게 다시 진흙탕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이들이 꿈꾸는 삶
반 더 린드 갱단은 왜 ‘한 탕’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이렇게 도망자의 삶을 사는 것일까? 게임을 하다보면 ‘전적타락’이 가져온 비참한 인생을 떠오르게 한다. 조금 나은 삶을 사는 듯 해 보이는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죄성을 여실이 드러낸다.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도 될 즈음, 그들의 마음은 다시 죄를 탐한다. 결국 화려한 인생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눈 딱 감고 죄를 범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화려한 인생으로 가기보다 점점 더 엉망이 되고 만다. 서로를 의심하고, 비난하고, 결국 파국에 치닫게 된다.
누구나 행복한 인생을 꿈꾸며 자신의 인생을 내어 던지지만, 결국 그들의 손에 남는 것이 없을 때 찾아오는 무력감, 그것이야 말로 피와 죽음이 얼룩진 갱단의 삶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돈을 벌어보지만 건강을 잃는 것,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달려가지만 가족들과 멀어지는 삶, 인생을 즐기자 말하며 살다보니 어느 순간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는 현실, 세상은 행복을 말하지만, 행복을 위해 달려가다보면 그것 때문에 포기한 것들로 우리는 금새 불행한 인생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그렇게 게임의 스토리라인은 답없는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래도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러 나가듯 다음 퀘스트를 진행하게 만든다.
의도치 않은 죽음의 그림자와 구속의 메시지
게임의 중반부까지 눈치채지 못했지만, 주인공 ‘아서’는 조금씩 잔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마을에 쓰러지고, 의사는 그에게 ‘결핵’으로 죽게 될 것이란 통보를 한다. 죽음을 앞에 둔 ‘아서’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 고민하며 이제까지 믿어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그리고 이내 그는 한 가지 결정을 한다.
인생을 함께 걸어온 갱단의 지도자 ‘반 더 린드’가 외친 ‘한 탕’의 인생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를 깨닫는다. 이제 게임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죽음을 앞둔 주인공의 결정과 그의 희생으로 생명을 얻게 된 ‘존’의 이야기를 교차시키며 ‘구속’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아서’는 누군가를 죽이며 살아왔다. 자신의 인생에 한 탕의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 이제까지 믿던 모든 것이 거짓 임을 보게 된다. 결국 그는 소외된 인디언 부족, 불의한 국가의 힘 앞에 정의를 지키려는 장교, 하나뿐인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색한 아버지 ‘존’을 돕기로 나선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어진 가치, 그렇게 게임은 주인공의 죽음과 새로운 삶의 이야기로 게임을 마무리되고, ‘존’의 가족 이야기가 에필로그로 이어진다. ‘아서’의 희생으로 삶을 얻은 ‘존’은, 아서의 뜻을 이어받아 삶을 살아가며, 레데리2는 피와 죽음과 구속에 대한 메시지를 마친다.
마치는 글
게임은 죄와 구속이라는 이야기를 별로 드러내지 않고 깊이 담아낸다. 만일 이 게임을 한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다면, ‘아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구속에 대해 이야기를 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인생의 선택과 방향성과 결과들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게임의 해석일 뿐,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암울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이 말하는 ‘희생’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구속’과 우리가 믿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차이는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세상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신 대속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분의 부활하심을 통해 이제 새로운 삶을 얻은 우리 모두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구속은 죄 값을 없애 주는 데서 멈추지 않았고,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고, 놀라운 소망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한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가운데 우리는, 그분을 쫓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반면 레데리2는 플레이어에게 감동적이지만 얕은 수준의 구속의 메시지를 전한다. 우리가 얻은 진정한 구속을 우리는 레데리2때의 감동만큼 느끼고 있을까? 그리스도안의 구속이라는 엄청난 메시지를 게임의 감격보다도 덜 느끼지 않았으면 싶다.
리뷰어 강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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