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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리뷰: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최종 수정일: 2021년 8월 22일

무엇이 사람을 움직이는가?

누군가 훌륭한 사람이 되는 법을 묻는다면, 일반적인 답은 학교에서 열심히 배우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좋은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할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을 묻는다면? 신앙인들도 주로 그 답을 교육에서 찾는다. 하지만 제임스 스미스는 이렇게 반박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이 도전적인 주장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세 명의 리뷰어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를 읽고 같이 나누어 보았다.


1. 저자는 무엇을 말하는가?


저자는 쇼핑센터를 주목하면서, 주차장으로부터 물건을 사는 모든 단계에서 얼마나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지를 설명한다. 이를 통해 ‘머리’로 이해해 왔던 그동안의 교육이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도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라고 도전한다. 이것은 그동안의 인간에 대한 설명과는 전혀 다른 설명에서 출발한다.


욕망하고 상상하는 동물로서의 인간


데카르트는 인간을 ‘생각하는 사물’로 정의했지만, 저자는 더 이전의 인간 이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랑에 근거한 인간’에서 답을 찾는다. 인간은 마음이 가르치는 사랑의 방향에 따라 인생을 살아간다. 저자는 방향의 끝에는 삶에 대한 미래전망이 있으며, 이것을 왕국이라고 표현한다. 이 왕국을 향해 나아가려고 사람의 마음을 ‘목적’이라 하며, 이 목적을 움직이는 지렛대를 ‘실천’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각자 특정한 왕국을 꿈꾸며 이를 위해 직접 실천하기 시작하는데, 저자는 이것을 ‘예전’이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은 자기만의 예전을 통해 변화해 나아간다는 뜻이다.


저자는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자신이 미래에 대한 전망을 향해 더 나아가게 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세상을 향한 실천이 지속적으로 쌓이면 미래에 대한 전망 역시 세상의 왕국을 향해 가게 되며, 반대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실천이 지속적으로 쌓이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는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실천에 의해 욕망이 특정한 방향을 향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실천이라는 의미를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예를 살펴보자. 먼저 인간의 마음을 자극하기 위해 쇼핑센터는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전도를 하고, 움직이는 광고 속 사람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쇼핑하는 인간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해 인간의 찌질함이 어떻게 소비를 통해 회복되는가를 보여주는데,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우리를 계속 자극 할수록 우리는 욕망은 어느새 우리를 쇼핑하는 인간으로 변화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비단 쇼핑 뿐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에 자리잡은 스포츠나 학교의 다양한 실천들도 이처럼 다양한 실천을 통해 그들의 왕국을 지향하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인간은 사랑하는 인간, 예배하는 인간,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



저자는 이러한 인간이해를 바탕으로 교회가 어떻게 예배를 이해해야 하는가를 언급한다. 기존의 교리중심의 방법보다 예배의 실천적 측면으로서 사회적 상상을 통해 접근해야 함을 주장하는데,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예전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그렇다면 성령의 임재 가운데 나타나는 예배, 하나님 중심의 예배로서 예전은 진정한 예배의 본질을 찾아가도록 돕는다.


이제 실천적 의례로서 예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예전을 살펴보자. 먼저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 나아가는 예배의 부르심으로부터, 하나님 안에서 서로 나누는 인사가운데 환영의 자리로 나아간다. 우리는 찬양을 통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하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규범)을 상기함으로 하나님이 이끄시는 좋은 삶의 방향성을 찾아 발견하고 나아가게 된다. 죄고백을 통해 깨어짐과 회복의 은혜를 기억하고, 세례의 고백 가운데 이전의 욕망을 부인하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게 되며, 우리의 신앙고백(사도신경)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의 입으로 고백하며 충성과 헌신을 다짐하게 된다. 기도와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준비하고 말씀 안에 변화된 삶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도전을 경험하게 된다. 성찬은 우리의 왕 이신 주와 함께 하는 저녁식사를 상기시키며, 봉헌은 감사의 일상을 회복시키고, 예배 후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파송의 시간은 우리에게 대위임령을 다시금 마주하게 하는 놀라운 도전을 준다. 비록 짧은 예전들 이지만, 밀도 높은 의미로 가득한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삶의 형성적 실천과 영적 훈련을 통한 도전으로 나아가게 될 힘을 얻는다.


끝으로 저자는. ‘새로운 수도원 운동’을 통해 실천적 영역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예전이 그만큼 중요하다면 학교와 교회를, 예배와 수업을 분리하기보다 실천을 형성하는 공간으로서 이 둘을 연결해야 한다. 또한 배움의 환경 측면에서 강의실, 기숙사, 이웃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관점으로 연결하고 동참시키도록 하며, 셋째, 몸과 정신의 분리가 아닌 연결을 통해 실천을 통한 배움의 완성에 이르도록 한다.

결론적으로 기독교 예배의 중요성은 우리가 속해 있는 세속적 예전에 대항하는 바른 욕망의 교육이어야 하며,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도록 교회의 실천과 다시 연결되어야 한다.

2. 우리는 무엇을 보았는가? : 인간이해에 대한 관점에서 살펴본 이원론의 한계성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울림이 있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의 전환이다. 데카르트 이후 계몽화 된 인간이해, 즉 ‘생각하는 사람’의 핵심은 ‘지성’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논리적 사고에만 집중하였고, 교육 방법들을 지나치게 정보의 주입에만 몰두하였다.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교육의 근거를 교리적인 해석에 두었고, 교회교육도 문자중심의 지적인 효과의 극대화에만 집중하였다.


저자의 주장처럼 기존의 논리적 방법만을 통한 교육에서 다양한 실천과 예전을 통한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지성에서 감성으로 교육의 범위가 확대될 놀라운 가능성을 말해준다.

따라서 기존의 기독교 교육방식은 분명 지성에만 치우쳐 있었고,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이전까지 고민하지 않았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적용해 보아야 할 도전을 받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측면에서 살펴볼 때, 과연 인간이 지성과 감성으로 분리되어야 하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분명 지성에 치우친 기존의 인간이해는 문제가 있지만, 반대로 감성적인 인간이해로만 전향해야 된다는 주장은 자칫 또 다른 잘못된 인간이해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도리어 극단적인 인간이해의 양분법(지성중심의 인간에서 사랑하는 인간으로의 전향)은 자칫 기존의 지성 중심의 인간이해는 폐기되어야 한다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지성과 감성(사랑)은 대치되어야 할 부분이 아닌 서로 유기적으로 보아야 할 부분이다.

이미 실천중심의 중세교회가 타락한 원인이 무엇이었는가? 실천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바른 이해 없는 무의미한 실천의 반복 때문에 생긴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자들이 외친 ‘오직 성경이로’라는 슬로건 역시 형식주의 신앙에서 계시의 말씀을 통한 깨달음을 주장한 것 아닌가? 따라서 지성과 감성은 양분하기보다 유기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


아울러 저자는 수도원 운동을 실질적인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이 말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카톨릭으로 전향하자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지성을 제외한 운동이 가지는 한계가 바로 이러한 부분이 아닐까? 실로 제임스 스미스 외에도 수많은 학자들이 지성에 근거한 인간이해의 문제점을 주장하지만 실상 그러한 문제의 대안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인간이해에 대한 한계를 지적한 저자의 탁월함에 더하여, 자칫 편향적인 인간이해가 가져올 문제점에 대해서는 읽는 이들의 분별이 필요하다. 인간의 사고와 감정은 구분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유기적 인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인간이해를 대치가 아닌 확장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더 풍성한 해석을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의 중요성과 확대해석의 경계


저자는 인간을 예전적 존재라 말할 정도로, 예전이 가지는 영향력을 강조한다. 현대교회가 말씀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가져온 예배의 불균형 적인 모습을 볼 때, 예전의 강조를 통한 예배의 회복은 많은 도전을 준다. "더욱이 두꺼운 실천으로서 예전이 우리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교회는 세상의 예전을 넘어서는 교회의 예전을 강화가 필요가 분명히 있다.


예배하는 인간으로서 예전의 중요성을 주장한 저자의 논리는 명확하고 통찰력이 있으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성을 겸비한 인간이라는 고민에서는 예전의 지나친 강조가 가져오는 불편함도 있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저자의 강조는 자칫 복음의 능력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쉬운 질문을 해보자. 예전이 사람을 바꾸는가? 말씀이 사람을 바꾸는가?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가? 깊이 고민하지 않더라도 지나친 예전의 강조는, 복음의 순수성이라는 측면에 분명히 반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또한 반복적인 예전이 두꺼운 실천으로 삶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반복적인 예전이 가져올 형식주의라는 문제점도 주의해야 한다. 과거 중세교회가 가져온 예배의 쇠퇴와 같이 말이다. 분명 예배의 풍성함이 예전을 통해 살아날 수 있지만, 반대로 예전 자체의 소중함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예배 자체의 소중함이 도리어 희석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풍성한 예배를 기대한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예배를 꿈꾼다면, 모든 예배의 요소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그 나라를 꿈꾸는 놀라운 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 교회가 함께 고민하며 예전에 대한 가치를 명확히 하고자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부분에 대해서 우리는 더 고민하며 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3. 갈무리하며…

한 저자의 글을 읽으며 나누는 대화 가운데 ‘예배하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도전과 두꺼운 실천으로 서의 ‘예전’의 필요성과 적용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각각의 리뷰어의 배경이 서로 다르고, 그 사역의 범위도 서로 다르기에 저자가 제시한 인간론과 예전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을 할 수 있었다.


세상이 사람들의 욕망을 두드리는 실천적 도전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현대교회는 어떻게 이 열망하는 세대(Desire generation)의 마음을 천국으로 향하게 할 것인가? 함께 살펴본 책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는 이 고민을 잃어버린 교회에게 다시금 성도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그 탁월함을 보여준다.

이 공동리뷰를 쓴 강현규, 이충일, 강현규 리뷰어는 깊은 내용을 쉬운 말로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절감하며, 훈련의 장으로 이 자리를 활용했습니다. 자세한 문의나 질의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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