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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플릭스 뒤집어보기: 홈스위트홈 ‘기어이 살아갈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최종 수정일: 2021년 2월 22일


제작비 300억 대작이자 충분히 철학적인 수작


<스위트홈>은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넷플릭스가 제작한 시리즈물이다. 조선일보 2020년 12월 22일자 기사[1]에 의하면 이 작품은 총 제작비 300억, 회당 30억원이 들어간 대작이다. 이 작품의 기본 틀은 좀비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 전체에 전염병이 퍼지고 이로 인해 도시가 마비된다. 병에 걸린 사람은 괴물이 되고 인간을 사냥한다. 소수의 생존자들이 남아 괴물과 싸워 나가지만 인류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 드라마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그린홈이라는 곧 재개발될 예정인 낡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일어난다. 그린홈의 주민들은 외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상태이고 그로 인해 극심한 불안 속에 살아가야 한다. 똑똑한 설정이지만 새로울 것은 없다. 최근에는 스페인 영화 <더 바> (The Bar, 2016)가 잘 사용한 무대설정이다. 이 모든 사건 뒤에 대중에게 진실을 감춘 정부와 군대가 있다는 설정도 낯설지 않다.


<스위트홈>의 기본 골격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모든 예술 작품은 서로를 복사하며 진화해 온 것 아니겠는가? 진부해 보이는 소재라도 그것을 얼마나 개연성 있게 버무려 내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스위트홈>은 이 모든 다양한 소재를 효과적으로 섞어낸 수작이다.


더욱이 <스위트홈>은 기존에 잘 알려진 영화 문법에 여러 흥미로운 요소를 새롭게 추가했다. 그 중 한 가지는 괴물마다 특징이 있고 심지어 매력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도 <스위트홈>에 나오는 괴물들을 분석한 영상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괴물이 되는 방식도 새롭다. 보통 서구 사회의 좀비 영화나 뱀파이어 영화에서 질병의 전파는 접촉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스위트홈>에서는 괴물에게 물려도 멀쩡하다. 목덜미가 물려도 괴물이 되지 않는다. 인물들을 괴물이 되게 만드는 것은 개인의 분노이다. 인간 개개인 속에 존재하는 분노가 괴물을 만들어 낸다. 어떤 사람들은 내재하는 분노에 굴복해 괴물이 되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그 분노와 싸워가며 인간성을 지켜낸다. 이것만으로 이미 충분히 철학적이다.


살아가는 것보다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 힘겨운 세상에서 기어이 살아갈 이유를 찾는 우리들의이야기


그러나 이 드라마가 진짜 주목받아야 할 부분은 다른 데 있다. 1편 도입부에는 “살아가는 것보다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 더 힘겨운 세상에서 기어이 살아갈 이유를 찾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라는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좀비나 흡혈귀 영화의 도입부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시작이다. <스위트홈>은 실제로 소위 ‘우리들의이야기’로가득하다. 사회 이슈들을 담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가장 초기에 괴물로 변하는 두 인물인 1411호 여성과 경비원을 생각해 보자. 1411호 여성(박아인분)은연예인이 되기 위해 스폰서 제안도 거절하고 다이어트를 지속한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식탐 괴물로 변한다. 청년층의 실업 문제, 연예인 지망생에 대한 스폰서 문제 등을 건드리고 있다. 경비원(신문성 분)은 갑질의 희생양이다. 잠시 쉬기 위해 근무지 내에 마련한 침대를 치우라며 모욕을 당하고 주민이 선물한 상자 속에는 썩은 생선이 들어 있다. 이 경비원은 흡수 괴물로 변한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차현수(송강분)는왕따 피해자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왕따를 당한 후 활발했던 소년은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은둔형 외톨이 은수는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들을 떠 올리며 괴물이 되어 간다. 빈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아기 엄마 임명숙(이봉련분)은민식이법을 생각나게 한다. 아이가 트럭에 치여 죽은 후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가던 엄마는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괴물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괴물이 된다는 설정에 주목하면 가정 폭력 가해자 김석현 (우현분)이괴물이 되는 것이 의아한 면이 있다. 김석현은 아내에게 막말과 폭력을 아무렇게나 행사하는 사람이다. 피해자가 괴물이 된다는 것이 공식이라면 매맞는 아내인 안선영 (김현 분)이 괴물이 되야 하지만 괴물이 되는 것은 김석현이다. 가정 폭력에서 가해자는 이미 괴물이고 피해자는 분노할 수조차 없는 상태가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대부분의 괴물들은 이렇듯 특정 사회 이슈와 연관되어 있다. 특히 무엇보다 사회 문제의 희생자들이 괴물이 되어간다. 봉쇄되어 있는 재개발 그린홈 아파트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슬픈 현실이다. 부자는 나쁜 사람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착한 사람일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현실 속에서 부인된다. 가난한 사람들이야 말로 괴물로 변할 가능성이 높은 위험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니 어떻게 살고 있는가? “살아가는 것보다 살아갈 이유를 찾는 것이 힘겨운 세상”에서 과연 희망은 있는가? 삶 자체보다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가 더 어렵다. 지독히 염세적이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희망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다친 발레리나 지망생, 휴학 후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가난한 의대생, 아동 납치 살해범, 전직 살인 청부업자, 무명의 음악인, 장애인, 천식을 앓고 있는 간병인, 시한부 노인, 가정 폭력 희생자, 고아, 공무원 시험 5수끝에 합격했지만 일할 정부 자체가 없어진 고시생, 신분 상승을 꿈꾼 딸을 괴물에게 잃은 어린이집 원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 모든 주요 인물들의 미래는 어둡다. 실제로 ‘살아갈이유’를찾기 어려운 사람들인 것이다.


정재헌, 모두가 희망을 잃은 공간에서 신의 뜻을 말하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인물


이런 상황에서 독실한 기독교인 국어교사 정재헌 (김남희분)의위치는 분명 매우 독특하다. 그는 1화 베이시스트 윤지수와 만나는 장면에 처음 등장한다. 정재헌은 “주님께서는가끔 극복하기 힘든 시련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서는 안 되죠. 신의 뜻이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성경이 들려 있다. 정재헌의 악수를 거절하며 윤지수는 말한다. “손에 담배 냄새가 절어 가지고.” 흡연을 핑계로 기독교인과의 의사소통을 회피하는 것이다.


윤지수는 이 드라마에서 가장 상식적이고 평범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의 눈을 통해 대한민국 평균 국민이 바라보는 기독교인은 고루하고 답답하고 전도에만 신경 쓰기에 상종하지 말아야 하는 괴짜라는 설정이 만들어진다.


괴물에 쫓기고 있는 사람을 향해 정재헌이 무심하게 “아는사람입니까?” 묻는 장면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또 다른 스테레오 타입이 등장한다. 이에 윤지수가 반문한다.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나대지 말고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는아니겠죠?” 기독교인은 자신과 가족의 안위에만 신경 쓰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은 신의 뜻일 리 없다.


이후 정재헌은 목숨을 걸고 괴물과 싸우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 너희가 주의 명한 대로 행하면 곧 주의 친구라.” 이기적이며 가식덩어리였던 기독교인 정재헌은 괴물과 싸우며 진짜 신의 뜻을 알고 행하는 사람으로 각성해간다.


모두가 회피하는 살인 청부업자 편상욱 (이진욱분)을이해하고 용납해 주는 인물이 정재헌이라는 것은 흥미롭다. 편상욱은 정재헌에게 마음을 열고 기도를 요청하기도 한다. 정재헌은 결국 아파트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괴물과 싸우다 경비원 괴물과 함께 불에 타 생을 마감한다.


정재헌은 모두가 희망을 잃은 공간에서 신의 뜻을 말하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더 찾기 어려운 시대’에 신의 뜻이 무엇일까? 드라마는 술과 담배로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만 신경 쓰는 교회의 모습이 신의 뜻 일 리 없다고 말하고 있다. 신의 뜻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다.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해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정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이 신의 뜻이다.


드라마는 양복을 입고 성경을 끼고 전도에 전념하지만 결국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 걱정하는 모습을 오늘날 기독교인의 전형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 없이 고통받는 공동체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심지어 기독교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신의 뜻’과도 상관없다.


신이 정말 없어도 된다면 진짜 신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무엇이란 말인가?


이 드라마에서 정재헌이라는 캐릭터의 존재는 기독교를 조롱하지만, 다른 한편 희망을 잃은 시대에 진짜 신의 뜻을 알기 원하는 작가의 희미한 바람으로도 읽힌다. 신을 부정하지만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결국 신이 필요한 것이다.


150년 전 니체는 《즐거운 학문》이라는 책에서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2]라며 신의 부재라는 화두를 던졌다.


얼마 전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철학 책이 니체 관련된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은 이제야 부모 세대의 종교를 부정하면서 진공이 되어버린 공간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아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은 의미 없이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드라마의 도입부 내레이션처럼 기어이 살아갈 이유를 찾아낸다. 그러나 이들이 찾아내는 그 이유는 매우 일시적이다. 강북 재개발 아파트에서 살면서 딸을 강남으로 보내는 학원 주인 아줌마의 삶의 이유는 딸의 신분 상승이다. 5수생 공무원의 삶의 이유는 시험 합격이지만 괴물의 공격 앞에 이 얕은 인생의 의미는 너무 쉽게 부숴진다. 진짜 인생의 의미가 필요하다.


진짜 인생의 의미는 오직 절대자만이 제공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그 사실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알고 있다. <스위트홈>이 보여주는 허무주의, 종교에 대한 조롱, 그리고 종교에 대한 역설적인 기대는 그러한 사실을 잘 드러낸다. 종교를 조롱하지만 참다운 신의 뜻이 무엇이냐고 계속해서 묻는다. 신이 정말 없어도 된다면 진짜 신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무엇이란 말인가?


“살아갈이유를 찾기가 힘들다”며울부짖는 세상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살아갈 이유가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 줄 수 있을까?

우리를 스쳐갔던 수많은 젊은 한국 청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손민영


[1] https://www.chosun.com/entertainments/entertain_photo/2020/12/22/OB4AJVPYYUQXCFAV7N2IL5S24E/ [2] https://namu.wiki/w/%EC%8B%A0%EC%9D%80%20%EC%A3%BD%EC%97%88%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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