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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끄집어낸 책: 재레드 다이아몬드의《총, 균, 쇠》에서 살펴본 성경적 관점

최종 수정일: 2021년 8월 23일


사람에 대한 애정이 뭉클뭉클 느껴지는 책


700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두께가 읽기에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막상 책을 읽기 시작하면 내용이 어렵고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논리로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인문학 서적임에도 저자는 여행 에세이 같은 서술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낯선 오지나 먼 고대로 여행을 떠난 여행자가 그곳에서 만난 현지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특별히 헌정사를 바친 뉴기니인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는 애정이 넘친다. 그런 점에서 강경화 장관이 “사람에 대한 애정이 뭉클뭉클 느껴지는 책”이라고 소개한 점은 이 책이 오랜 세월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를 잘 말해준다.


인류 문명 불평등은 환경의 차이, 그것은 우연인가 하나님의 섭리인가


저자는 ‘인류 문명의 불평등이 언제, 어떻게, 왜 발생했을까?’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저자는 자신의 문명 연구의 동기가 문명의 우위를 판단하는 데 있지 않음을 밝힌다. 또한 암묵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인종주의, 즉 민족 간 생리학적 차이나 지능 차이가 있다는 가정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저자는 인류 문명의 불평등의 원인이 환경의 차이에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저자의 논리에 대해 일부 역사학자는 단순한 환경결정론이라고 못 박아서 무시하거나 환경에 반응하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저자의 논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분별할 수 있을까?


선사시대부터 환경적으로 유리한 지역에서 살게 된 ‘우연’이 오늘날 문명의 우열을 가리게 되었고,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는 논리를 일단 인정한다고 했을 때 뒤따르는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러한 환경의 차이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얘기하지 않고는 환경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따라서 ‘우연’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섭리’로 대체되어야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진화론자의 강력한 증거가 화석이라면 창조론자의 강력한 증거는 말씀이다.


생태학적 자살, 하나님의 창조 세계 훼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창 1:27)하시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창 1:26)하셨다. 그러나 땅의 경영권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인간은 사리사욕과 무분별한 개발에 눈이 멀어버렸다. 그리하여 환경을 파괴하고 자연을 훼손하며 지구생태계의 위기를 초래하는 ‘생태학적 자살’을 저질렀다. 이에 대한 저자의 빛나는 통찰을 『총, 균, 쇠』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대에는 그리스를 포함한 지중해 동부 일대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많은 지역이 숲으로 덮여 있었다. () 이곳의 숲은 농업을 하기 위해 개간하고 건축용 목재를 구하기 위해 벌채하고 뗄감으로 쓰거나 회반죽을 만들기 위해 태우는 바람에 사라지고 말았다. () 그들은 자원의 기반을 스스로 파괴하는 생태학적 자살을 저질렀던 것이다. (p.588)

인류 문명의 운명이 환경에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논리는 지구온난화와 환경 오염 등 지구생태계가 파괴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 세계의 회복을 위해 지금, 당장 우리가 멈춰야 할 것은 무엇인지 묵상하게 만든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스스로 낮추고 기도할 때


《총, 균, 쇠》의 부제는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병균이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라는 문제는 우리가 삶 속에서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현실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tvN에서 방영된 강경화 장관과 다이아몬드 교수의 화상회담 내용도 참고할 만하다.

과거 전염병의 연장선에 있는 코로나는 동물에서 시작되어 인간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코로나19가 끝이 아닙니다. 코로나 백신이 모두를 지켜줄까요? 알 수 없습니다.… 우린 아무것도 몰라요. 백신의 유효 기간은? …우리가 아는 것은 코로나가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칠 거라는 거죠.[i]

최첨단 과학 기술 문명을 자랑하던 21세기 인류는 코로나 대재앙을 맞아 속수무책이었으며 죽음의 공포와 타인에 대한 적대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오직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다이아몬드의 말처럼 백신의 효능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100% 확신할 수는 없다.

“우린 아무것도 모른다”는 다이아몬드 교수의 말이 일견 비관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그의 말은 과학 기술을 과신했던 인간의 오만, 질병이 인간을 죽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음을 간과했던 무방비 상태를 드러낸다. 나아가 인간의 무능함과 죄악을 회개하는 말로 들린다. ‘우린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각이 생길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만이 살길이다.


건설적 편집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있어서 필요한 자세를 다이아몬드 교수의 논리로 설명한다면 ‘건설적 편집증’(Constructive Paranoia: 일상 속 위험에 충분히 대비하는 자세)[ii]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건설적 편집증’은 그가 뉴기니에서 오랜 세월 머물며 얻은 통찰로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뉴기니 원주민들은 어떤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 나기 때문에 극도로 조심하는 것을 일컫는다.


다이아몬드 교수에 의하면 건설적 편집증은 모든 것이 잘못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위기에도 준비되어야 한다”는 건설적 편집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옮기면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마태복음 21장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34-36)

맺으며


《총, 균, 쇠》는 인류 문명의 불평등의 원인을 환경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환경의 차이가 ‘우연’에 불과해서 만약 남북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남단의 원주민과 유라시아 민족들이 선사시대 때부터 거주 지역이 바뀌었더라면 오늘날의 사정은 정반대가 되었을 것으로 단정한다. 흥미로운 관점이지만 역사는 천지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주관되고 있음을 믿는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성립되지 않는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볼 때 저자가 말하는 ‘우연’의 논리는 ‘하나님의 섭리’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책이나 대담에서 기독교적으로 유의미한 관점도 찾을 수 있다. 무분별한 환경 개발이 초래한 ‘생태학적 자살’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훼손한 인류의 죄악을 돌아보게 만든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목소리와 여러 가지 예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그런데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대답한다. 그의 비관적인 답변은 왜 하나님이 21세기 최첨단 과학문명을 자랑하는 지금의 세대가 코로나 팬데믹을 맞이하게끔 허락하셨을 지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만든다.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을 비로소 찾게 될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자각이 들 때 뿐이다.


다이아몬드는 전통사회에서 발견한 ‘건설적 편집증’이 코로나 이후 인류가 배워야할 자세라고 말한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건설적 편집증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만든다.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 전염병에 대한 무방비한 경계 해제 등은 코로나 팬데믹을 불러온 빙산의 일각이라고 할 수 있다. 수면 밑에 있는 더 큰 빙산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예배의 기쁨을 잊어버린 채 영적으로 깊은 잠든 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이리라/ 이주영

[i] tvN 미래수업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강경화 장관 대담, https://youtu.be/EKljhx-AJlI [ii] ‘건설적 편집증’은 위 대담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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