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번쯤은 어른이란 무엇인가? 또 언제부터 어른이라고 불려지는가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네이버 국어 사전은 어른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성숙한 어른의 모습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성숙한 신앙을 가진 어른을 보기는 더 어렵지 않을까 고민해 본다. 분명 어딘가에 살고 있을 예수님과 같은 사람 혹은 사람들이 이 세상 속에 빛과 소금의 역할들을 잘 감당하고 있으리라 믿어지지만 과연 내가 그런 성숙한 신앙을 가진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드라마가 있다.
<나의 아저씨>는 세상의 서로 다른 끝에 서 있는 두 인물이 만나 서로의 삶을 공유하며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이다.
드라마 속 박동훈 부장(이선균)의 일상 속에 이지안(이지은)이라는 인물이 들어가 살게 되면서 한없이 일상적인 모습 가운데 서서히 변화하는 모습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나가는 드라마이다. 박동훈 부장의 삶은 ‘성실한 무기 징역수’라고 표현되며, 스스로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삶을 보고 변화하는 소녀 가장 이지안을 바라보며 자기 안의 여전히 남아 있는 따뜻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박동훈 부장의 삶으로부터 20년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살아 있음을 느끼는 이지안. 무엇보다 그들의 대화를 통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위로를 준다.
한 사람의 일상을 통해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의 향기
“고맙다, 고마워. 거지 같은 내 인생 다 듣고도 내 편 들어줘서” “아저씨 말, 생각, 발소리.... 사람이 뭔지 처음 본 거 같았어요”
드라마 속 박동훈 부장은 이사로 진급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이지안에게 박동훈 부장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도록 도청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지안은 계속 도청을 하면서 오히려 박동훈의 따뜻한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게 된다. 누구나 비밀은 있고 감추고 싶은 삶의 영역이 있다. 드러나면 부끄럽고, 남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줄 수 있는 숨기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박동훈 부장도 마찬가지로 아내의 불륜과 직장 상사와의 어려움 등 보이지 않고 싶은 삶의 치부가 있다. 하지만 그 일들을 마주하는 박동훈의 따뜻한 모습에 이지안은 마음을 조금씩 열게 된다. 또한 그가 베푼 호의가 가식이 아닌 마음 속으로부터 흘러나왔음을 알게 된다.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을 하나하나 보고 계실 하나님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부끄러운 모습이 많은 것을 모두가 알 것이다. 반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진실됨 또한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선한 영향력은 누군가에게 삶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주고, 한 발자국 나아가 그 선한 영향력을 흘려 보낼 수 있는 힘까지도 기를 수 있게 해준다.
세상의 시각이 아닌, 사랑의 시각으로 바라볼 때 나타나는 변화
“네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야” “모른 척해 줄게. 너에 대해서 무슨 얘길 들어도 모른 척해 줄게”
드라마 속 이지안은 사채 빚 독촉을 받는 소녀 가장이다. 점점 심해지는 빚 독촉으로 인해 결국은 할머니를 몰아세우는 사채업자를 칼로 찔러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정당방위로 인정은 받지만, 살인 전과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늘 고통받으며 살아간다. 그런 인생에 찾아온 박동훈 부장은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 되어준다. 누구 하나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는데,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박동훈 부장의 따뜻한 위로에 얼어있던 마음이 녹아 내린다.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현재의 상황이 아닌, 과거의 일들을 들추어 내어 사람을 판단하곤 한다. 그 상황에선 옳다고 믿었던 자신의 생각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하나의 짧은 식견인 경우도 많다. 드라마 속 아저씨 박동훈 부장은 그런 색안경을 벗고 이지안을 바라보며 ‘내 편’이 되어준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편’이 있다는 것은 세상 속 만연하는 편견과 비뚤어진 시선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힘을 준다. 마치 성경 속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먼저 다가가 변화시키셨던 것처럼.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열매로 나타나야 할 관계
“10년 후든, 20년 후든 길에서 너 만나면 반갑게 아는 척할 거야.” “껄끄럽고 불편해서 피하는 게 아니고, 만나면 반갑게 아는 척할 거야”
이지안에게 베푼 호의로 인해 회사 내에서 부적절한 관계로 오해받는 박동훈 부장. 스스로 회사를 나가겠다는 이지안의 결정에 박동훈 부장은 반대한다. 불편함을 피함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닌, 오해를 풀어나가고 다른 사람의 잘못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이 살아가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준다. 살다 보면 관계 속에서 오는 오해가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을 풀지 못하고 그저 불편함을 남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박동훈은 한 사람의 성숙한 어른으로 대처함으로써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관계의 시작과 끝이 참 중요한데, 어떠한 이유에서든 시작된 관계들이 결국에는 본인의 욕심 혹은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서 불편하게 끝날 때가 많다. 순간의 선택으로 원하는 것을 쟁취하고 마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관계를 맺음에도 열매가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
후계동을 통해 바라본 우리가 지향하는 그리스도 공동체
“뭘 갚아요,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니에요.”
드라마 속 배경으로 등장하는 후계동의 사람들을 통해서 요즘 우리들의 공동체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마치 교회를 연상케 하는 드라마 속 배경 후계동. 세상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온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며 살아간다. 기쁜 일이 있을 땐 함께 기뻐해 주고, 또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에는 마음의 위로뿐만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머리를 모아 고민한다. 어쩌면 각박한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가 잃어버린 부분이 아닐까 한다. 대가 없이 그저 필요함을 채워주는 사랑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 않을까. 받은 만큼 갚아 줘야 하는 비지니스 같은 관계가 아닌, 받은 만큼 행복하게 살아낼 수 있는 사랑의 관계 말이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가 없는 한없는 사랑을 베푸신 것처럼. 그리고 그 사랑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후계동은 마치 천국처럼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공동체와 교회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서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하나된 마음으로 보듬어서 하나님의 창조 질서대로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바로 그 공동체.
조각난 인생 속 일상 그 속의 따뜻함
<나의 아저씨>는 극중 한 인물의 삶을 보고 한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보통의 드라마였다면 극중 주인공인 아저씨의 역할을 한 사람이 영웅과 같은 인물로 그려지겠지만, 이 드라마 속 주인공은 일반적인 영웅적 면모를 갖추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과 일상 속에서 본인의 평범한 일상으로 한 사람과 집단을 바꾸어 나간다. 하지만 그 가치관을 통해서 개인이, 공동체가 받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나타난다. 비록 드라마 속 후계 공동체는 깨진 세상을 살아가는 조각난 인생들이 모여 있지만, 서로의 조각난 부분들이 연결되어 결국엔 하나됨을 보여준다. 마치 드라마 속 등장 인물들이 현실에 존재하는 듯한 설정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더 큰 효과와 도전을 준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 속에서 혹시 이지안과 같은 인물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고 찾아보면 어떨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드라마 속 박동훈 부장과 같은 사람이 내가, 우리가 되어 후계동과 같은 공동체를 이룰 순 없을까?
이재원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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