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1년 10월에 https://mikefrost.net/the-gospel-according-to-squid-game/ 을 통해 올린 호주 선교신학자 마이클 프로스트의 허락을 받아 번역한 내용이다. 이 글에서 마이클 포르스트는 단순히 영화평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복음과 관련된 은유들을 찾아본다. 매우 창조적인 영화읽기의 한 예이자, 호주신학자의 한국사회에 대한 평가들이 흥미로운 글이다. (역주)
알파와 오메가
드라마는 성기훈이 오징어 게임에 스카우트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처음에는 자신을 대대로 불교 집안이라고 설명하며 낯선 이를 쫓아 내려한다. 스카우터가 교회 다니라고 전도하러 다니는 사람이라고 착각한 데서 온 자연스러운 반응일게다. (한국의 공격적 전도에 대한 기훈의 불편함이 드러나 보인다. 역주) 어쨋든 스카우터는 자신이 종교와는 아무 관계없다고 장담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오징어게임이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성기운은 오일남이라는 어르신 참가자와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일남과 기훈이 각각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상징할 수 있다. 그들의 참가번호가 결정적 단서다. 일남은 첫번째 참가자로서 1번이고, 기훈은 마지막 참가자인 456번 이기 때문에 처음과 마지막, 알파와 오메가를 연상케 한다.
극 중, 그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1번과 456번이 새겨진 겉옷을 바꿔 입기도 한다. 두 사람은 동시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듯 하다. 이것이 과연 우연일까? 또 다른 장면에서는 노쇠하고 편찮은 일남이 이층침대 꼭대기에서 다른 참가자들에게 열정적으로 울부짖는다. 마치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려보며 분노했던 모세의 하나님처럼 말이다.
일남과 기훈 둘 다, 극 중에서 몇 안되는 연민을 가진 인물이다. 일남은 온화하고 친절하며, 기훈은 극 초반에는 실패한 인생 그 자체를 보여준다지만, 극이 진행될 수록 따듯한 마음과 거침없는 행동파임을 보여준다. 게임에 참가하면서 기훈은, 그동안 몰랐던 자기안의 가치관들 (관대함, 정직함, 친절함)들을 발견하게 된다. 후에는 일남은 노약한 빈민이 아닌 오징어 게임의 주최자 중 한 명이며, 자신이 만든 게임에 스스로 참여한 억만장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런 일남을 대상으로, 기훈은 구슬치기게임에서 주저하긴 해도 결국 상대를 속여 우승자가 된다. 그는 실제로 그의 마지막 경쟁자 조상우를 비롯해 여러 참가자들을 처형/사형하기를 거부한다. 조상우는 가룟 유다를 상징하는 것 같은데, 양심의 가책 또는 패배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일남, 그리고 예수님과 기훈이 가진 공통점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의해야한다. 일남은 자신과 비롯해 다른 억만장자들의 스쳐가는 유흥을 위해 잔인하고 냉담한 게임을 만들었다. 기훈은 게임에 참여하기 전에는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도 실패한 인생이었고, 게임을 통해서 자신의 더 나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그도 역시 예수님과 전혀 닮지 않았다.
황동혁 감독은 작품에 크리스찬 상징들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았다. 이를 테면, 막달라 마리아와 연관 지을 수 있는 북한 이탈 주민인 강새벽 같이 말이다.
고통받는 종
마지막 도전 중, 기훈은 손을 찔리는데,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대놓고 암시한 듯 하다. 그는 결국 최종 우승자로서 꿈에서도 못 볼 만한 아주 큰 금액을 (3천팔백만불) 상으로 받는다. 그가 서울의 거리로 돌아 왔을 때 “예수 천당”이라는 사인을 들고 있는 거리 전도자 발 앞에 버려진다.
하지만 기훈은 상금을 전혀 즐기지 못한다. 거기서 즐거움을 얻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피를 흘렸다. 한 푼도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의 죄의 무게에 짓눌려서, 그리고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는 고통스러워 한다. 이 시기의 기훈의 겉모습도 수염과 긴 머리로 인해 점점 예수님을 닮아간다.
결국 그는 서울의 한 고층빌딩의 제일 꼭대기에 위치한 억만장자 일남에게 불려간다. 이는 마치 하나님의 보좌처럼 세상 보다 높은 위치에서 고통받는 그들을 내려본다. 하지만 일남은 뇌종양으로 죽어가고 있다. 창문 가의 병원 침대에서 꼼짝하지 못한다. 그는 죽기 전에 기훈을 만나 왜 상금을 쓰지 않고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들의 대화 중, 일남은 기훈을 자신의 아들과 비교하지만, 이 둘이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관은 매우 다르다. 일남은 인류를 없어도 되는 부패한 존재라 생각하고, 이는 그가 오징어 게임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마치 장난감처럼 사용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실제로 그는 차가운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노숙자를 놓고 기훈과 내기를 한다. 일남은 아무도 이 노숙자를 도와주지 않을 거라며,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그는 크리스마스 날이 지나가기 전에 사망할 거라 말한다. 기훈은 내기를 받아드린다. 그는 인간의 내면 가운데 선함이 남아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지나가는 행인들은 일남의 말처럼 노숙자를 피해서 지나가고, 그가 처한 곤경을 무시한다.
어쩌면 황동혁 감독은 구약의 하나님을 변덕스럽고 비판적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밤새도록 노숙자를 고난 받게 하다니, 어쩌면 하나님이 욥을 대했을 때, 그의 모든 것을 가져가셨을 때를 떠올렸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예수님은 조금 더 친절하고, 사랑 가득한 종류의 종교를 가져온다고 믿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정이 된 순간 사망하는 이는 일남이지, 노숙자가 아니다. 추위에 얼은 노숙자는 지나가는 행인 덕분에 경찰차로 구조된다. 기훈은 내기를 이기고, 일남은 크리스마스 날 사망한다.
두번째 오심
위 같은 운명적인 만남 후, 기훈은 꽤나 파격적인 선택들을 한다. 새벽의 남동생과 상우의 어머니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딸을 보러 미국 행 비행기를 탑승할 준비를 한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머리카락을 새빨간 색으로 염색한다. 그의 겉모습이 변신한다. 완전 새로운 사람 같아 보인다. 이는 부활했던 예수님, 친구들도 못 알아보았던 예수님을 연상시키게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미국 행 비행기를 탑승하던 중, 기훈은 떠나지 못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는 남아서 오징어 게임을 없애고, 이 게임에 참여할 사람들을 막아야한다고 믿는다. 잔인함과 고통을 여기서 끝내야 한다. 극은 다짐한 기훈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터미널로 다시 걸어가는 당당한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시즌 투 계획은 없다고 했지만, 만약 생긴다면 성기훈의 재도전에 대해서 일거라고 짐작된다.
죄와 구원
감독에 의하면 오징어 게임은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기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우화를 쓰고 싶었다. 극도의 경쟁은 인생 속의 경쟁과 비슷하다. 그리고 일상에서 만났을 법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쓰고 싶었다.” (옆의 사진은 또다른 자본주의에 대한 우화로 소개된 영화 기생충의 한장면)
이는 오징어 게임을 이 시대 최고로 날카롭고 인기있는 자본주의 비평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에 대한 한국의 관점을 잘 보여준다. 한국의 문화는 극도로 경쟁적이고 스트레스가 높다. 작은 땅에 많은 인구로 인해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성공해야 하는 압박이 굉장하고, 이는 사회적 문제가 된다. 감독은,
“북한으로 인해 아시아 대륙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우리는 고립되어 있다. 이 스트레스가 우리를 항상 다음 위기에 대비하게 한다. 이 사실은 한편으로는 동기부여가 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묻게 한다. 하지만 이런 경쟁은 부작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감독은 개인이 어쩌다 한번 하는 잘못된 선택이 아닌 크리스천이 말하는 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한 자리에 굳어버린 인류의 상태,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내면의 상처는 모두 자본주의 때문이라 말한다. 하지만 스트레스와 경쟁 뒤에는 더 깊은 형태의 죄들이 있다. 두려움, 탐욕, 이기심. 감독은 한국 사회가 보이지 않는 절대 권력에 붙잡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의 복종, 상업적 성공, 그리고 극한 경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해 보인다.
한국은 구원자를 찾고 있다.
오징어 게임을 참가하는 가난한 이들의 구원자는, 숙소 천장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돼지 저금통이다. 하지만 이 상품은, 죄와 탐욕과 경쟁의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남은 이에게만 주어진다. 기훈은 상금을 이기고, 그 많은 현금은 그를 자유롭게 하지도, 행복하게 하지도 않는다. 돈은 거짓 신이고 하찮은 구원자이다.
우리는 오징어 게임을 없애려는 기훈의 계획이 그에게 성취감을 허락할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감독은 한국 돈이 가득한 유리구슬이 나라의 문제의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예수님의 재림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 할 수도 있겠다. 내가 바라기를, 구원받기 원하는 그 마음과 교감할 수 있는 한국의 그리스도인이 있기를 바란다. 나라가 회복되기까지 필요한 건 그리스도 라는 사실을…
번역자 민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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