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의 혼인 건수는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인구 변화, 사회/경제적 상황, 인식 변화 등의 여러 요소들로 인하여 2012년부터 9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결과로 교회 안에 결혼하지 않은 지체들이 증가했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동체 안에서 설 곳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라고 믿고 있는 교회 안의 분위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 질서일까? 마치 하나님의 뜻에 거스르는 듯한 저 발칙한? 질문에 답해 주는 웹툰이 있다. 안정혜 작가의 ‘비혼주의자 마리아’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자연스레 묵인하고 감당해야했던 성차별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여성 혐오적인 마음을 발견했다. 그 마음과 함께 성차별적 신학이 정당화된 교회 안에서 남성들에게 권위가 집중되어 있는 현실이, 정말 성경이 말하는 바가 맞는지 알기 위해 이 작품을 시작했다.
‘비혼주의자’와 ‘마리아’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 누군가에게는 제목부터 불경스럽게 느껴질 이 웹툰은 참 흥미롭다. 마리아라는 한 청년이 비혼주의자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내몬 한국 사회와 교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탄탄한 스토리로 엮어냈다. 결혼을 준비하던 마리아는 예비 배우자에게 상처를 받아 비혼을 선포하고 교회를 떠난다. 그러나 동생 한나를 통해 참석하게 된 독서모임에서 ‘바울과 여성’이라는 주제로 신랄한 논쟁을 하고, 예비 배우자였던 사역자의 그루밍 성폭력 사건을 돕는 과정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참 뜻을 발견해 나간다.
“남녀평등이다, 페미니즘이다 요즘 뭐 복잡하지만, 우리는 그냥 성경에 써 있는 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그죠? 아멘?”
“그거는 아니지. 니 언니 시집 보내기 전까지는 한나 니도 안 되는 것이여.”
“너 미쳤니? 너 그리스도인이야! 예수 믿는 사람이야!! (결혼은 당연히 해야지.)”
“나는 당연히 결혼은 창조 질서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좋은 거라고 생각해.”
“일단 여성 그리스도인은 결혼하고 애 낳는 게 제일 소중한 사명인 것처럼여기는 분위기”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계속 그렇게 배워 왔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성차별적 발언을 들어도 보지 못했다.”
“목사님은 저한테... 그냥 아버지 같은... 영적 아버지 같은 사람인데...”
우리가 흔히 교회 안에서 듣는 이야기들이다. 이 웹툰은 여기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진다. 독서 모임을 통해 거침 없이 논쟁을 하고 하나하나 되짚어 가면서 교회 안에서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진 개념들이 사실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교회와 신앙에 회의적이었던 마리아뿐만 아니라 독서 모임에 참여한 그리스도인들이 남성과 여성, 그리고 교회와 성경에 대한 자신들의 편견과 오해를 바로 잡고 참된 신앙에 눈을 뜨게 된다.
이 웹툰은 자연스러운 전개 가운데 유교적 문화, 가부장적 사고방식, 성차별의 기저에 깔린 성경 이해와 해석, 페미니즘, 사제주의, 그루밍 성범죄, 현실에 맞지 않는 교단법, 남성 중심의 사고 방식, 여성 혐오, 남성의권위를 강조하는 교회 안의 교육, 우상숭배 등의 문제들을 잘 다루었다.
이를통해 남녀평등의 관점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위쪽에 있는 남성들에게는 던져진 문제들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반성을 돕고, 여성들에게는 스스로 답을 찾아 자립 가능한 신앙의 길을 걷도록 의식을 깨워주는 웹툰이다.
신앙은 개인의 주체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다. 여성은 남성을 돕는 보조적인 역할이 아닌 그 사람 자체가 하나의 인격으로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향유하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대표적 성경 구절은 창세기 2장 18절과 3장 16절이다. 2장 20절의 돕는 배필의 ‘돕는’을 뜻하는 히브리어 ‘עֵ֖זֶר(에제르)’는 보조적인 도움이 아닌 스스로 도움이 필요 없는 존재가 도움을 줄 때 사용된 단어이다. 주로 하나님의 도움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을 돕기 위해 창조되었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3장 16절의 남자가 여자를 다스린다는 내용 역시 죄로 인한 저주의 일부로써 주어진 것이지 창조 질서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지면상 다 다루지 못하지만 웹툰 안에는 이러한 설명들이 잘 소개되어 있다.
첫질문으로 돌아가보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것이 창조 질서이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일까?
팀 켈러에 따르면 세속주의는 개인을 우상으로 여김으로써 가정을 거부하지만, 뿌리 깊은 전통 종교들은 반대로 가정 그 자체를 우상처럼 섬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비단 기독교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세상의 거의 모든 종교와 문화는 가정과 양육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온 것이다.
스탠리하우어워스는 《교회됨》이라는 책에서 기독교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전통적 종교들과 다르게 ‘비혼’이라는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팀 켈러는 자신의 책 《결혼을 말하다》에서 고린도전서 7장을 보면 독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좋은 조건이며, 결혼보다 나아 보이기도 한다고 하였다. 초대교회에서는 결혼에 대해 압박감을 주지 않았다. 당시 사회와 문화 속에서 상속 받을 자녀가 없는 것은 굉장히 수치스럽고 납득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머지 않아 임할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고대하며 하나님이 미래를 보장해준다는 믿음 가운데 독신을 선택하는 것을 권하기도 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 따라 결혼도 독신도 다 복음을 위해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였다(고전 7:7).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선물이다. 동시에 비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택할 수 있다는 포용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사람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물리적으로 결혼하고 출산을 하는 것만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아니다(창 1:27-28). 문자적인 해석으로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을 잘못 적용하여 선교사들을 앞세워 전쟁과 침략을 일삼던 역사의 전철을 밟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 뒤에 땅에 충만하고 다스리라는 명령도 주셨다. 단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일을 너머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는 그 질서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종종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가치들과 성경적 가치를 혼동하곤 한다. 성경적 가치들은 문화와 함께 전승되고 이어지기 때문이다. 두 가지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결혼과 비혼, 모두 복음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건강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
혼인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복음과 하나님 나라를 향한 마음의 중심이 중요한 것이다. 복음은 우리 모두를 하나되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28)
이 웹툰은 떼 본 적 없는, 주체로서의 신앙의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마지막 부분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떨렸다. 만약 당신이 그리 길지 않은 이 웹툰을 끝까지 보게 된다면, 굉장히 큰 유익과 도전이 될 것이다.
Jonas Lee 리뷰어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웹툰도 찾아서 무료보기 가능한 데까지 보았는데 이렇게 다양한 색깔을 가진 작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 좋네요.
그동안 웹툰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는데.... 소설만큼이나 깊은 울림이 있네요. 비혼의 문제는 교회가 초대교회시대부터 안고 있었던 역사관의 딜레마, 다시말해 언제라도 곧 다시오실 심판자 그리스도를 맞는 자세와 창조세계의 회복사명을 위해 청지기로서 현실을 가꾸고 챙겨야 할 책임가의 갈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양쪽에서 뭐가 빠져있는 지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보며 필요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결혼문제는 그런식으로는 답을 내리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네요 ㅠㅠ 각 사람이 가진 소명의 영역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