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커비랭 공공신학연구소의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소장의 최근 글이다. 바르톨로뮤 박사는 성경의 큰 그림과 기독교세계관, 그리고 포스트모던 문화의 현실에 대한 보다 균형 잡힌 설명을 해 온 복음주의학자이다. 로뎀나무아래 문화비평의 근간을 이루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학에 대해서도 여러 연구서를 쓴 바 있다. 19세기말-20세기초에 활동한 카이퍼는 한국에서도 기독교 세계관 운동 하면 쉽게 떠올리는 모델이기도 하지만, 카이퍼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는 부족한 편이다. 덕분에 한국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학문 연구활동처럼 좁혀졌고 유행이 지난 뒤에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사라져 버렸다.
바르톨로뮤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만난 카이퍼를 소개하면서, 카이퍼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원래 커비랭연구소의 정기잡지인 '빅아이디어' 5월호에 실린 이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일반인도 좀 더 읽기 쉽게 풀어 번역한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아브라함 카이퍼와 그의 기독교 세계관 운동에 대한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기를 기대한다.
아브라함 카이퍼를 소개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그의 비범함은 그의 이력에 잘 드러난다: 목사, 신학자, 다작의 작가이자 동시에 기자였고, 네덜란드의 정치가이자 수상이었다. 영어권에서는 림머 드 브리스 (Rimmer de Vries)의 수고로 카이퍼의 글들이 많이 번역되었고, 덕분에 나도 ‘카이퍼 유산의 소개 Contours of the Kuyperian Tradition’란 책을 쓸 수 있었다. 이제 내가 경험한 카이퍼를 여러분과 나누어 보려고 한다.
나는 인종 차별 격리 정책이 적용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랐지만, 그곳의 역동적이며 활기찬 복음주의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지금까지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당시 남아프리카의 백인 우월주의 정책은 일상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쳤고, 안타깝게도 그것은 그리스도의 이름 아래서 이뤄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복음과 남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을 조화할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고, 정치 사상까지 아우르는 삶의 모든 부분을 좌우하는 내 ‘세계관’을 정리하면서 비로소 돌파구를 찾았다. 이때 도움을 준 것은 포체프스트롬 대학에서 만난 카이퍼 전통을 따르는 사람들이었고, 이 중 엘레나 보타(Elaine Botha)는 나와 평생 동지가 되었다.
그때까지 내가 놓치고 있었던 것은 카이퍼가 남긴 유산의 핵심이 ‘선교’라는 것이다. 언뜻 딱딱한 개혁주의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도 카이퍼의 제자들은 성경 전체 이야기의 관점으로 선교를 얘기하고 있다.
당시 나는 헤르만 도예베르트 (Herman Dooyeweerd)의 유산을 따르는 학자들을 통해서도 카이퍼를 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도예베르트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를 통해 배운 것이 많았다. 그의 개혁주의 학문 체계는 나의 모든 연구에 영향을 끼쳤다. 십년 넘게 캐나다의 리디머 대학에서 반 러너 석좌교수로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영광이었다. 일반적으로 도예베르트 학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카이퍼보다 한발 더 앞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카이퍼나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보다, 도예베르트나 다른 개혁주의학자들의 글을 더 권장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이러한 접근방법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개혁주의 신학은 카이퍼라는 토양에서 싹을 틔운 학문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그 토양을 소홀히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카이퍼 유산의 전체 소개서를 준비하면서, 나는 그에 대해 좀 더 몰두할 수 있었고 많은 유익을 얻었다. 카이퍼에 대한 연구가 늘어가는 오늘날 현실에서, 나는 우리가 카이퍼를 읽어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1. 팔링게네시스(palingenesis)의 강조
카이퍼는 성경 원문인 헬라어를 자주 사용하지만, 일부 용어는 제대로 그 의미가 전달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그의 신학에 기초가 되는 아주 중요한 용어인 ‘팔링게네시스’다.
디도서 3장 5절에 나오는 ‘팔링게네시스’란 표현은 개인이 하나님과 인격적 만남을 할 때 쓰는 말이다. 카이퍼 자신의 회고에 따르면, 그는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지만, 실제로 살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은 레이던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과정 중에서였다고 고백한다. 약혼녀가 입교를 준비할 때조차 카이퍼는 그녀의 고지식한 신앙을 무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선물로 줬던 책 “래드클리프의 상속자”를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 샬롯 영이 쓴 이 책은 그 해 베스트 셀러였고, 그에게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도와줬다. 이 소설 앞부분에 등장하는 거만한 주인공에 깊이 공감했고, 그가 회개하여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장면에서 카이퍼도 함께했다고 한다.
때문에 카이퍼의 삶에서 회심의 경험은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뺄 수 없는 부분이며, 우리에게도 회심은 중요하다. 이 말은 카이퍼의 유산과 개혁주의 전통이 매우 지적이고 설득력이 있지만, 살아 계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서 멀어질 때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말하듯이,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 즉 그를 인격적으로 알고 또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작이자 끝이다. 이 점에서 카이퍼의 유산은 복음주의 관점을 통해 항상 새롭게 경험되어야 하며, 이것을 감사하게도 잘 일깨워 준 학자가 마크 로크(Mark Roques)다. 이 살아 계신 예수님과의 만남이야 말로, 카이퍼의 유산이 보여주는 복음의 깊이, 즉 참된 복음(유앙겔리온: euangelion)이며, 이를 계속 전파해야 한다.
카이퍼는 일반 경건서도 많이 남겼다. 여기에 보면 회심은 단지 주님과 동행하는 여정의 시작일 뿐 끝이 아니다. 나의 책에서도 강조된 바도, 바른 기독교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영적 성숙’이라는 점이다. 이론만 엄청나게 배우고 예수님의 형상을 따라 전인적 성장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런 신학은 의미도 없지만 쉽게 매력을 잃게 된다. 작년 캄펜신학교에서 한 ‘화란 개혁주의 신학자 바빙크 (Bavinck)에 대한 강의’에서, 바빙크와 카이퍼는 경험만 쫓는 신비주의를 비판했지만, 나는 이런 입장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지속적인 영적 성장 훈련 면에서 보면, 개신교나 복음주의는 카톨릭의 깊고 오래된 전통에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옛 전통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고, 이를 통해 영장 성장을 위한 기도 훈련 회복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동시에 이 때문에 성경과 멀어지는 위험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말씀’을 기초로 한 더 깊은 영적 훈련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 이 글을 보는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것은 영성은 실천이고 이론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도와 영적 성장에 대해서 아무리 많은 책을 섭렵한들, 지속적인 실천 훈련만이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디도서의 ‘팔링게네시스’가 ‘개인의 중생’을 뜻한다면, 마태복음 19장28절에서는 ‘만물의 회복’을 말하는 단어로 등장한다. 카이퍼는 이러한 이중적 의미를 적극 활용한다. 마가복음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소유하는 것과 비유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부터 주님의 온 만물을 아우르는 목적인 ‘미시오데이’(missio-Dei: 하나님의 선교)로 불림을 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회심부터 온 세상을 염두에 두고 움직이게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카이퍼는 복음주의를 끊임없이 괴롭혀 온 ‘성속 분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를 통해 자연의 생명 자체와 기독교 예배의 모든 부분을 복음으로 도전한다. 모든 만물과 생명은 모두 다 주님을 예배하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진 피터슨 (Eugene Peterson)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기독교인들은 거룩한 소명을 받은 자들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문제는 어디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한 바른 답을 찾아야 한다. 카이퍼는 자신의 말년인, 1898년 프린스톤신학교에서 행했던 스톤 기념 강좌에서 ‘칼빈주의 연구’란 강의를 통해, 이러한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비전을 세계관(worldview)이라고 표현했다.
2. 성경 본문에 주목하기
카이퍼는 역사 비평적 성경 연구에 대한 비판의 개척자였다. 근대에 와서 역사 비평은 화란의 지적 중심지인 레이던대학을 비롯하여 학계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카이퍼는 ‘모더니즘’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해, 역사 비평이 모더니즘, 계몽주의 세계관에서 나왔음을 꿰뚫어 보았다. 때문에 역사 비평의 옳고 그름을 부분적으로 논의하는 것은 큰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가진 세계관과 성경적 세계관을 대조하여 반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모더니즘, 계몽주의가 가져다 준 많은 장점들을 인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실 카이퍼나 바빙크는 성서학자는 아니었다. 바빙크는 자신의 입장을 더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적절한 성경 연구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이를 위해 임시방편으로 매튜 헨리 (Matthew Henry)의 성경 연구 주석을 네덜란드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카이퍼와 바빙크는 역사 비평의 한계를 보았다. 역사 비평에서 하는 성경에 대한 비판적 연구 방법이 여러 가지 새로운 이해를 가져왔음을 인정하면서도, 지금 우리도 공감하듯이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위험성을 지적했다.
실제로 현대 신학에서는 성경을 깊게 다루는 저작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나는 브루스 애쉬포드 (Bruce Ashford)와 함께, “창조의 신학-건설적인 카이퍼식 접근』(The Doctrine of Creation: A Constructive Kuyperian Approach”이란 책을 통해, 신학 연구에서 깊이 있게 성경을 다루는 분위기를 일깨우고 격려하려고 시도했다. 이 책에서는 성경적 근거를 강조하기 위해 성경 본문에 사용된 헬라어와 히브리어 용어에 대한 각주를 달아 놓았다.
이런 방법은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칼 바르트가 가장 좋은 예를 보여준다. 그가 쓴 “교회교의학”에서 창조에 대해 다루는 부분을 보면, 100 페이지 정도의 창세기 1장에 대한 신학적인 각주를 달아 놓았다. 나는 요즘 작업할 때 “교의학”의 성경 구절 색인을 보며 바르트의 생각을 참조한다. 카이퍼도 성경을 깊게 연구하는 노력은 바르트에 지지 않았다. 그의 “일반은총”의 제 1권을 보면, 누군가는 해야 했을 그러나 좀 뜬금없고 개인적인 성경 주석을 달고 있다. 카이퍼 같은 네덜란드의 성경 연구 전통을 더 발굴하고 우리 언어로 번역할 부분이 여전히 많다.
3. 적절한 질문하기의 모델
나는 남아프리카에서 신학교를 다녔고, 그즈음 위대한 개혁주의 전통에 입문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학교들이 그렇듯, 우리가 직접 해답을 찾는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정보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가르쳤다. 이 후 옥스퍼드대를 다니면서, 비로소 스스로 탐구하고 조사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교수로서 나의 교육 철학은 “질문을 사랑하라”이다. 내 수업에서는 신입생 때부터 학생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그에 따른 그들만의 질문을 할 수 있게 돕는다. 너무 단순한 질문이란 건 없다.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토론의 주제로 인도하는 질문을 하고, 검토해야 할 이슈들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다. 진정한 공부는 적절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카이퍼와 그의 유산을 아끼는 이유는, 이를 통해 제대로 질문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다.
자연과 은혜의 관계는 무엇인가?
창조의 ‘텔로스’목적은 무엇인가?
사회 철학이 다루는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권은 어떤 영향을 미치나?
현대사회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은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키는가?
대학은 무엇인가?
신학대학원과 대학교의 신학에 있어서의 차이는 무엇인가?
자녀교육의 총 책임자는 누구인가?
삶 속에 대립 관계들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적절한 반응은?
계몽기 이후 문화 속에서 기독교 변증론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하는가/방향으로 향해야 하는가?
다원주의 문화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방식으로 함께 해야 하는가?
제도적 교회는 무엇이며 유기적 교회와는 어떤 관계인가?
여러분도 이런 질문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카이퍼의 유산은 우리가 분석해야 할 대상을 통찰력을 가지고 접근하고, 다양한 표현 방법과 필요한 내용을 담도록 도와준다.
그런 의미에서 카이퍼의 유산은 다양한 아이디어의 시장 같다. 그러나 현재 내가 있는 영국이나 유럽에는, (이런 내용들을 개발시킬) 신학을 위한 더 높은 수준의 연구과정은 없다. 이런 과정의 필요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대학들이 당장의 일에 매달려, 고착돼 버리는 현실은 참 안타깝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카이퍼 전통은 (개혁주의 신학을 공격하는 이들의 오해와는 달리) 토론을 차단하기는 커녕, 이를 통해 더 넓고 깊게 내용에 접근하는 배움의 자세를 갖게 한다.
나도 내 책의 서평 중에서 자유주의적이라고 공격을 받은 적이 있지만, (카이퍼에게 배운 유산 덕분에) 나는 이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인다.
이 부분에 있어서도 카이퍼는 좋은 모델이 된다. 이 글이 나온 잡지에 같이 기고한 ‘아브라함 카이퍼와 과학’이란 글에서도, 특히 카이퍼의 진화론에 대한 평가 글을 다루었다. 카이퍼는 부인과 사별한 후 이 글을 썼는데, 준비 노트를 보면 70명 정도나 되는 저자들을 참고해서 작업한 것으로 나온다. 이중 몇몇은 오늘날 위키피디아에서도 등장하는 진화론의 권위자들이었다.
4. 신학에 대한 기초작업
인식론과 철학 영역에서만 보면 카이퍼의 유산은 상당한 열매를 맺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대 타임지는 ‘철학계에 하나님이 돌아왔다’고 보도하며 알빈 플란팅가 (Alvin Platinga 위의 사진)를 개신교 최고의 종교 철학자로 꼽은 적이 있다. 플란팅가 같은 카이퍼 전통에 뿌리를 둔 개혁주의 학자들은, 일반 학계에도 기독교 철학이 인정받게 만드는 대단한 선교적 성과를 이루었다.
이런 현상은 기존 신학계에서는 전혀 볼 수 없던 일이다. 내가 보기에 이런 조직적인 신학적 연구는, 기독교 전통과 믿음을 통해 조명한 성경 이해,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안고 살아가는 질문들이 모두 연결되어 벌어진 일이다. 실제로 기독교 조직 신학은 (모든 세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기본이 되는 통찰력을 준다. 도예베르트와 달리, 나는 신학과 철학 둘 다 기초 과학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플란팅가같은 깊은 신학적 연구가 더 나오지 않게 된 것은, 카이퍼 전통을 제대로 못 살리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한다.
다행히도 영어권에서는 최근 고든 스파이크맨 (Gordon Spykman)이 쓴 “개혁주의 신학”과 베르카우어 Berkouwer)의 책들, 그리고 바빙크에 대한 연구가 재조명되고 있다. 바빙크 연구는 존 볼트 (John Bolt)의 연구가 중요한 역할을 했고, 최근에는 훌륭한 바빙크의 전기도 출판됐다. 기존의 바빙크 연구자들인 반 덴브링크 (Gijsbert van den Brink) 나 반덴 쿠리 (Kees van der Kooi) 같은 이들의 연구도 영어 번역이 이뤄지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카이퍼나 바빙크를 단순히 학자로만 보고, 무시하는 것은 곤란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카이퍼 신학의 새로운 개화다. 최근
내가 쓴 “창조의 교리”(옆의 표지)가 더 읽힐 수 있다면, 카이퍼 신학의 전성기를 열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신학자로서 카이퍼의 대표작은 세 권 짜리 “신학대백과사전 Encyclopedia of Sacred Theology”인데, 영어권에서는 아쉽게도 이 책 중 2권의 일부만 번역되어 있다. 또한 그의 “교의학”’이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한 해설을 담은 책도 영어로는 번역되지 않았다. “신학대백과사전”을 보면, 신학자이자 철학자로서 카이퍼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신학이 과학인가’란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과학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출발한다. 복음주의 신학자 데이비드 보쉬 (David Bosch)는 이 책이 가진 수많은 통찰력 중에서도, 특히 카이퍼가 가장 먼저 선교학을 삼위일체적으로 설명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는 카이퍼가 남긴 많은 자료들이 있으며, 이것을 번역-발굴하고, 개발할 필요가 있다.
5. 카이퍼 전통이 맺은 결실
누군가의 유산이 잘 뿌리내리고 더 가꿔야 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려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카이퍼 유산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더 나가서 이제 더 꽃을 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카이퍼의 유산은 오랫동안 연구할 만한 위대한 작품들과 적용의 예를 만들어냈고, 현대에는 가장 예상치 못한 곳까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카이퍼의 유산을 추종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을 최종적 권위로 삼고, 카이퍼를 이해해야 한다. 카이퍼에게도 비판받을 점은 있다. 남아프리카인으로 내가 보기에는, 그가 아프리카너(남아공 태생 백인들)의 인종분리 주의를 지지했다는 점은 가장 큰 오점으로 남아있다.
그는 당시 영국의 제국주의는 비판했지만 남아공의 인종분리 정책에 대해서는 아주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남아공의 백인 기독교인들과 지식인들이 유럽에서 유행하는 사상과 생활방식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여기에 카이퍼는 큰 도전이 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 점은 그가 남긴 유산의 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바빙크는 훨씬 앞서 있었고, 그에게 박사 과정을 지도받던 학생들은, 남아공의 인종 차별을 비판하고 예언자적 자세를 유지했다. 이 점은 카이퍼의 제자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퍼의 유산은 여전히 많은 열매를 만들었다. 마무리로 한 가지 예를 들려고 한다. 나는 최근 성경 사전을 편찬하면서 철학적 해석학에 대한 소개 초안을 마쳤다. 여기서 나는 성경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해석학’이 매우 중요하다고 썼다. 어디에서 그런 예를 찾을 수 있나?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성경을 아주 깊게 신학적으로 해석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을 할 때 철학과 거리를 두고, “기독교적 철학이란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이에 반해, 근대 프랑스 가톨릭 신학자들은 (당시 유행하던 철학인) 현상학적 연구를 통해 기독교 철학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현상학 연구를 통해 성경을 보다 깊고 창의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는 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이었다. 카이퍼의 유산도 마찬가지다. 그의 유산을 통해 알빈 플란팅거,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 스티븐 에반스 (Stephen Evans) 등의 학자들은, 매우 창의적이고 대담한 성경 해석을 통해 성경 해석학이라는 유용한 철학적 자산을 낳았기 때문이다.
결론 (아래는 저자)
나는 카이퍼의 유산이 이제 전성기를 맞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놀랍게 벌어지는 기독교 르네상스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발전이 문화적 깊이를 갖추려면 카이퍼의 유산이 꼭 필요하다. 이 유산은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성경을 굳게 붙잡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든 창조물이 주님의 것임을 알게 한다. 지금이 우리가 이 전통을 갱신하고 발전시킬 시기이다. 나는 모두가 비전을 가지고 협력하며, 창의적으로 이 과제를 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Veni Creator Spiritus(오소서 성령이시여!)
번역자 민주홍리뷰어
카이퍼 사상의 재발견은 복음주의가 원래가진 지적 저력을 회복시키는 운동인 동시에, 아직까지도 우리 삶을 지배하는 모더니즘에 대한 분별력을 가져오는 중요한 틀이기도 하기에, 저희 모두가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이후시대에는 정부와 과학의 힘이 더 많은 것을 도전하게 될테니, 이것을 그냥 겉으로 나타난 몇가지 갈등에 집중해서 반응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점에서 카이퍼의 도움이 절실하지요
그 대단했던 카이퍼도 소설책 한 권을 읽고 회심했군요! Culture review가 꼭 필요한 이유를 다시 확인하고 갑니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쉬운 글은 아니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영성은 실천이라는 부분에 깊이 공감합니다. 다음 세대인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서 삶 속에서 말씀을 실천하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기도하며, 부모 세대들 또한 좋은 믿음의 선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