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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editor

주제리뷰: '탈교회'가 말하는 교회상이야기

최종 수정일: 2021년 8월 22일


내가 회심하고 교회를 다니던 시기는 1990년대 후반이었다.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서 열심히 그리고 후회 없이 교회를 섬겼고 잊을 수 없을 만큼 즐거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늘날 같이 교회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교인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느 때부터 ‘가나안 성도’라는 용어가 들리기 시작했고, 이제는 이러한 탈교회 현상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회/종교적 현상, 보편적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이 책은 13명의 공동 저자들이 참여하여 탈교회 현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한다. 저자들은 탈교회 현상을 종교/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새로운 공동체의 모델들과 대안들을 점검한다. 그리고 교회사 속에 나타난 사례들을 통해 탈교회 현상의 역사를 되짚어본다. 끝으로 전통적 교회론의 입장에서 탈교회 현상을 비판하여 다양한 시각으로 탈교회 현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여러 저자가 다양한 시각에서 탈교회 현상을 분석하는 책이고 가나안 성도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가 매우 다양하기에 때문에 해결책도 다양해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전체적으로 일관되고 논리적인 설명이 어렵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부록으로 실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탈교회, 진단과 전망’이라는 대담을 먼저 읽고 책을 시작하면 한결 접근하기 쉬워진다.


서구권에서는 넓게 교회 난민, 종교적이지는 않지만 영적인, 소속 없는 믿음, de-churched people 등으로 불리는 ‘가나안 성도’란,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은 가지고 있지만 현재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찾아다녔듯이, 제도 교회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교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놀랐던 지점은 가나안 성도들에 대한 통계를 보았을 때다. 지난 2014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조사에서 교회에서 출석하지 않는 교인이 10.5%로 나타났는데, 이를 근거로 한국개신교인 가운데 100만 명 정도가 가나안 성도일 것으로 추정하였다. 2017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조사 결과에서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가나안 성도를 23.3%로 파악하였다.

2015년 인구센서스에서 파악된 개신교 인구가 96,776천명임을 감안하면, 가나안 성도는 대략 2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가나안 성도가 200만 명으로 추정된다는 통계는 큰 충격이었다. 여기에 아직 제도 교회에 남아 있으면서 교회를 떠날 마음을 가지고 있는 ‘예비 가나안 성도’들의 숫자를 더해볼 때,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염려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나안 성도들로 대표되는 탈교회, 탈종교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종교가 쇠퇴할 것이라는 ‘세속화 이론’이란 것이 널리 받아들여진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유럽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세계의 종교 인구가 증가하고 있음에 종교사회학자들은 주목한다. 도리어 현대사회에서 종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쇠퇴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 형태(종교)에서 개인적인(방식의)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즉, 현대인의 종교 생활은 과거처럼 기존의 패키지화된 경험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종교를 자신의 창조물로서의 경험적 생산물을 추구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한 ‘시장 이론’을 통해 탈교회는 종교 시장의 수요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라고 분석하며 유럽의 종교 쇠퇴와 미국의 종교 성장을 근거로 설명하기도 한다.


탈교회 현상의 사회적 요인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다. 포스트모던 사회의 탈현대적 경향으로 집단보다 개인이 중시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사회 변화에 따라 탈현대 시대의 사람들은 제도 종교의 의례, 가르침, 계율은 따르지 않으면서 신앙생활을 선호하는 경향, 즉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특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서구사회에서 진행되어 온 일들이며 개인주의화 된 신앙의 추구를 가져왔다. 개인주의는 궁극적으로 ‘공동체 없는 개인’을 양산했고, 교회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배출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동시에 기존 교회 구조나 교리들이 세상에 대한 설명력을 잃고, 이에 부응하지 못한 상태에서 목회자에 대한 불만, 교인들에 대한 불만, 신앙에 대한 회의 등의 교회적 요인들이 탈교회 현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탈교회 현상은 우리에게 큰 위기감을 던져준다. 한국교회의 위기를 이야기하던 때가 이미 오래전이니 어쩌면 이미 한국교회가 무너져가는 역사의 순간에 서서 여전히 과거의 영광에 매여 옴짝달싹 못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탈교회 현상을 새로운 교회의 출현을 촉발하는 계기로 여기며 기회라는 주장들도 있다.

이 시대를 de-churched(교회와 결별)가 아닌 post-churched(교회란 조직에서 벗어난 시대)로 인식하여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개혁을 외치는 주장이다.

post-churched 시대는 다른 말로 포스트 크리스텐덤(기독교가 지배하는 국가나 사회) 시대라고도 표현할 수 있고, 서구사회가 이미 들어간 단계이기도 하다. 한국도 기독교 국가는 아니었지만 정서적/심정적 으로 보면 포스트 크리스텐덤 시대로 접어 들었다. 이러한 시대 흐름 가운데 ‘선교적 교회’와 ‘제도 밖의 교회’ 그리고 ‘평신도 교회’등이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선교적 교회는 교회가 크리스텐덤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착각을 버리고, 교회가 이 세상의 중심이 아니며, 교회가 세상 속에 성육신하여 일상, 직업, 일터라는 세상 속에 선교적 삶을 구현하는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교회의 절대다수는 전통적 제도권 아래 있는 교회들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심사숙고해야 할 영역은 바로 교회론이다.

초대교회 시대 때부터 전통 기독교 교회론을 대변하는 “교회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키프리아누스와 “살아 있는 교회는 곧 그리스도의 몸이다”라는 클레멘트의 주장들을 생각해볼 때, 우리는 중요한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교회 밖으로 나간 가나안 성도들의 구원 여부는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이 아닌가? 여기서의 교회는 개혁주의 교회론에서 이야기하는 가시적 교회인가 불가시적 교회인가?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교회의 표지에서 벗어난 공동체를 떠난 것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이 교회론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공통된 관점을 가지고 있다. 비록 소속된 교회가 타락하고 교회의 표지를 잃은 것처럼 보여도 교회론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타락한 교회 자체도 개혁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함께 주어지지만, 저자들의 어조는 굉장히 강경하다. 교리적으로는 저자들의 말에 100% 동의하지만, 목숨 같이 사랑했고 정들었던 교회를 떠나 끓는 가슴과 눈물로 주일을 보내는 성도들을 볼 때 세속화된 한국교회가 야속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탈교회 현상에 대한 대안은 무엇일까?


비록 저자들이 각자 다른 관점에서 탈교회 현상과 가나안 성도 문제에 대해 접근했지만, 대안에 대한 견해의 핵심들은 대동소이하다. 책 전반에 걸쳐 대안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본질을 잃어버리고 시대에 동떨어져 사회적/문화적으로 고립된 교회에 개혁이 시급하다.

2) 이 개혁은 개교회 중심의 개혁이 아닌 전체적이고 공공성을 향한 개혁이 되어야 한다.

3) 가나안 성도들의 신앙을 보호할 새로운 유형의 교회들과 파라 처치들이 필요하다.


가나안 성도들은 제도 교회의 한계를 보고 떠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제도화된 교회가 문제이지 제도 교회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본질에 대한 문제이다. 오늘날 제도 교회들은 예수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과 관습에 매였던 이스라엘의 모습과 겹쳐진다. 일제말 기독교인이었던 김교신의 ‘무교회주의’를 분석한 장에서도, 교회를 물리적으로 떠나 신앙생활을 주장했던 것이 아닌, 하나님 중심과 말씀 중심의 삶, 즉 본질이 제도를 이끌어 가는 교회를 추구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본질에 대해서는 ‘평신도 교회’ 장에서 ‘비일상의 일상화’ 등의 주장을 통해 탁월하게 설명된다. 이 장을 쓴 최규창씨는 저자 중 유일하게 신학 전공자가 아지만,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마음을 울린다. 이 자체가 이미 목회자 중심의 제도권 교회 문화에 던져지는 개혁의 목소리는 아닐까?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과 시급성은 어제오늘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보다 교회 개혁이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그리고 사회를 향해 공공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개신교가 세속화로 인하여 교회의 보편성과 일치성을 잃어버림으로 인해 유의미한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문제인 것은 아닐까?

“교회 개혁은 단순히 현실 교회 내부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교회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고 높은 수준의 개혁을 추구하지만, 교회 외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보다 확장된 공동체 개념과 좁다란 교회 울타리를 넘어 사회 전체를 내다볼 수 있는 사회의식이 필요하다.”

는 정재영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이 간다.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탈교회 현상에 Covid-19가 얹혀진 전대미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우리 시대는 수 백 년 전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으로 일구어낸 종교(교회) 개혁이 다시 필요한 것은 아닐까? Covid-19이 종식된 후의 교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이충일 리뷰어는 이런 고민이 담긴 교회를 포기하지 않는 시드니 서머힐이란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사역자입니다.

조회수 202회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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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entários


hyungyu kang
hyungyu kang
04 de jun. de 2021

탈교회의 현상과 교회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함에 있어서 탁월함이 엿보입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고민되는 것은 파라처치의 개념이 늘 필요는 느끼지만 그에 맞는 합당한 모델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기존의 이머징 처치와 같은 도전들 같이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 답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포기하기보다 세대를 향해 나아갈 바른 교회의 모델을 계속 고민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목사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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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kyu Joo
Jinkyu Joo
27 de mai. de 2021

하필이면 100만년마다 한번씩 터지는 "활화산"과 같은 시대를 살게 되어서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중세시대 유럽에 태어났으면 당시 모든 백성들 처럼 그냥 조용히 교회다니며 신앙생활하다가 갔었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그렇찮아도 변하는것도 많고 볼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은 상황에서, 결코 뺄수 없는 교회에 관한 너무 많은 생각들, 우리 충일님께서 잘 정리해 올려 주셔서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호주 떠난지가 꽤 오래 되었는데 "써머힐" 이라는 동네 이름이 왜 이렇게 정겹게 들리죠. 80년대 중반 청년시절 다니던 교회가 Ashfield 에 있었는데, 써머힐은 그 전 정거장으로 기억하는데 맞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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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editor
28 de mai. de 2021
Respondendo a

ㅎㅎ 맞습니다 애쉬필드 바로 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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