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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권하는 신앙: 드레허의 '베네딕트 옵션' 리뷰

최종 수정일: 2021년 8월 23일


시대 흐름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현실이기에, 현대 기독교도 변화의 물결 앞에서 큰 위기를 겪고 있다. 기독교는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했고, 기존 교회들은 참다운 구령 보다는 신자의 구미를 충족시키는 곳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교회를 이탈하는 가나안 교인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베네딕트 옵션’은 이러한 현실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 들이 살아가야 할 방법에 대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가 바라보는 시대적인 진단 – ‘덕의 상실’의 시대


저자 로드 드레허는 미국남부의 바이블벨트 지역인 루이지애나에서 감리교인으로 자라났고, 이후 성공회와 그리스정교로 개종한 화려한 전적의 소유자이지만, 전반적으로 정통기독교의 관점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현재 미국 기독교는 가정이 붕괴되고, 전통적 가치관이 상실되고, 공동체가 파괴된 상태에 있다고 진단한다. 매킨타이어의 ‘덕의 상실’이라는 책을 인용하며 이 시대는 객관적, 도덕적 선(善)과 선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신념이 사회적으로 더 이상 고유 되지 않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도덕적 선택은 오직 개인이 옳다고 느끼는 바에 달리게 되고, 이것을 덕을 상실한 시대라고 그는 표현한다. 이러한 미국의 현실은 영원할 것 같았던 로마제국의 쇠락기와 비슷하다고 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6세기 로마 쇠락기에 등장한 이가 은수자 베네딕투스였다. 그는 고트족의 침략이라는 끔찍한 재앙을 피해 수도원을 만들고, 그 속에서의 삶과 실천을 통해 기독교 사회를 재건하기 시작했다고 드레허는 소개하고 있다.


베네딕트 옵션 – 수도원 주의


수도원은 베네딕투스의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는 수도원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위해 ‘규칙’을 세워, 수도원운동을 정립했다. 이 속에 담긴 ‘수도원의 이상’은, 세상의 현실적 대안으로 삶에 필요한 도움과 희망을 제공하고, 영적 생활을 지도하며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으로 이끌어 주었다. 수도원 생활은 규칙적 성경읽기, 정해진 시간의 기도, 적절한 농사나 건축 등을 통해 필요를 채우는데 보태 졌다. 이러한 삶의 방식을 통해, 신앙공동체는 세상에 생명을 공급하고, 새로운 희망을 열어주는 도구가 되었다. 드레허는 베네딕투스의 사례가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대안과 희망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위기의 근원


물론 현재상황은 당시로부터 여러가지 변화를 거쳐왔다. 베네딕투스 시대 사람들은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항상 전제했고, 사람, 장소, 사물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다고 믿었다. 그런 실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인간의 죄성 때문이라고 생각했지, 그런 실재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당연히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에 의해 존재하도록 지음 받았고, 그 의미는 하나님의 초월적 질서에 연결됨 으로서 뒷받침 된다고 믿었다.


이후 근대에 들어와 자연주의와 개인주의 시대가 열리자, 유럽인의 사고방식은 하나님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바뀌어 갔다. 이는 인간 생활의 초점도 하나님 영광에서 인간의 영광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했다.

종교개혁은 성경적 신앙의 회복이라는 중요한 의미도 있지만, 이때문에 교회의 분열은 더 심해지고, 중세시대 보다 더 쉽게 개인의 영달에 치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후 19세기 산업혁명과 20세기 세계대전을 거치며 이러한 경향은 더 심해지고, 모든 영역에서 신적영역이 점점 더 좁아지는 인본주의로 나아갔다.


삶의 방식을 바꿔라!!


그러나 이러한 현대문화에 문제의식이 없이 동화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여기에 도전이 되는 것이 초대교인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당시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와 도덕, 예배 의식을 지켰고, 이때문에 핍박을 받아 순교를 당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 방식때문에, 생존뿐 아니라 주류 로마사회를 무너뜨리기까지 했다.

사진출처 https://www.italywhereelse.com/subiaco-the-city-of-benedictine-monasteries/


여기서 내가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베네딕투스의 ‘예전적 예배를 회복’하자는 외침이다. 예전적 예배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안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반영하기 위해, 제의적 요소들을 통해 초월자와 교통하고,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성례전의 활용을 말한다. 여기서 ‘성례전’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깊은 임재하심을 예배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구체적인 형태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열린 예배를 지향하는 현대예배 형식은, 찬양과 기도와 말씀 세가지 요소가 하나님 보다는 인간 개인의 영달에 더 초점이 맞추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임재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기회가 되기 힘들다.

단순한 감성적 터치를 초월자와의 만남으로 착각하기 쉽고, 말씀의 전달 방법도 텍스트 중심이 아닌 컨텍스트 중심으로 전달 됨으로써, 그리스도를 지속적으로 깊이 만나는 경험을 어렵게 만든다.

내가 주목하는 또 한가지는 ‘금욕주의’ 즉 훈련에 대한 강조다. 베네딕투스가 그랬듯이 매일같이 시간을 정해 기도하고, 성경 읽기에 헌신했던 것 처럼, 우리도 가족과의 식사를 정례화하고, 삶 속에서 끊거나 수행해야 할 규칙을 정해 실천하는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위기돌파를 위한 현실적 대안


그 다음 중요한 포인트는 성경읽기에 대한 강조다. 신자의 궁극적 목적은 온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그 분과 영원한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말씀을 새기고 말씀을 강론하고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라고 명령한다. 이 말은 그 만큼 인간의 죄성이 하나님과 연합을 어렵게 한다는 반증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경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일이 중요하다. 이점은 오늘날에도 변함이 없다.

성인들 역시, 세상이 주도하는 방식으로부터 성경이 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고 깨닫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특히 신학적 문맹상태에 지배적인 현대기독교인들의 상태를 볼 때 더 간절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베네딕투스의 모델을 따라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라’고 주장한다.

이는 교우간에 지속적인 관계와 규칙적인 만남을 통해 공동체를 ‘생활화’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예배와 교육이 특히 중요하다. 저자는 특별히 공교육이 무너진 이 시대에 대안으로, 고전적 기독교 학교가 필요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홈 스쿨링이라도 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왜냐하면 학교와 교회, 가정이 하나가 되어 전인적 교육을 하지 않으면, 우리 자녀들은 밀려오는 비기독교적 영향들이 만드는 대홍수에 쓸려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생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에 관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론

‘죽은 물고기는 물살을 따라서 떠내려 가지만 살아있는 것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간다.’

덕을 상실한 현대사회는 과학으로 증명된 것 만을 믿고, 물질 만능주의를 신봉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 빠져, 혼란과 자기 파멸의 길로 내닫고 있다. ‘베네딕트 옵션’은 이러한 위기의 시대를 돌파할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성경적 가치관을 다음세대에 전해주고, 성경적 질서와 규범을 세상에 증거하여, 세상이 소망을 품고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사진은 메노나이트중에서 더 보수적인 구룹에 속하는 아미쉬 공동체 여성들의 모습


이러한 시도는 이미 미국 메노나이트 공동체를 통해서 실재를 볼 수 있다. 이들은 성경 원리에 따라 세상과 분리되어 자신만의 공동체를 세우고, 성경적인 홈 스쿨링을 통한 전인교육을 자녀들에게 시키고, 전통적인 농사법과 정직한 사업을 통해 살아간다. 이들의 생활은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에게 큰 희망을 주고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들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저자는 ‘실제적으로’ 이러한 모델이야 말로 용서에 가장 적극적이고 세상의 구제에 가장 헌신적이며 정직한 삶을 최우선 순위에 둠으로써, 세상에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베네딕트 옵션을 찾아 나섰다가 이탈리아 가톨릭 공동체를 이끌게 된 91세의 마르코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마친다.


‘우리가 이 삶에서 만드는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치 그것이 영원할 것처럼 만들어야 해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겁니다. 당신이 한 여인에게 평생을 약속할 때 그 약속이 바로 영원이 시간 속에 현현 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그렇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달려있고 우리의 일은 오직 그 분을 섬기기 위해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마르코 할아버지는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탈리아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말이 없을 때는 당나귀가 일을 잘 할 수 있다.’ 저는 스스로를 당나귀라고 여깁니다. 너무나 많은 순 혈종 말이 어디로도 달리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이 늙은 당나귀는 일을 해내고 있죠. 당신과 제가 이 작은 당나귀처럼 일을 해 나갑시다. 잊지 마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예루살렘으로 모신 것은 당나귀였습니다.”


여기서 제시된 베네딕투스의 모델이 나의 현실에도 더 호소력을 가지는 것은 왜 일까? 교회가 무너져 내리고, 환경이 파괴되고, 인간성이 상실되는 이 시대에, 세상의 시각에서는 아무일 아닌 예배, 성경읽기, 훈련, 노동 같은 하찮은 일들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바로 이런 일들이야 말로, 위기의 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을 붙들어주고, 회복을 경험케 하며, 결국 세상에 소망이 되어 빛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지 않을까?

김정근 리뷰어님은 깊은 책읽기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누리기 원하는 신앙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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