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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위힌 신학: “온라인 교회도 정말 교회인가? 하나님의 성전으로서의 교회” 논문리뷰

최종 수정일: 2021년 3월 1일

아래글은 Is online church really church? The church as god’s temple by Ronald Giese Jr Themelious Vol 45: 2 August 2020, 347-367의 리뷰입니다. 전문을 읽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여기영어로 된 내용요약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수고해주신 김기섭님께 감사드립니다.


예배를 대체해도 되는가를 묻는다. 여기인 그동안 중단된 ‘교회 대면모임과 예배’가 백신 후에는 이전처럼 돌아가는 게 정답인지를 묻는 질문도 들어있다.


이미 코로나 전부터, 온라인 문화가 더 편안해진 현실 속에서 교회가 어디까지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지 논란이 있었다.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에 대해, 칼빈은 ‘바른 말씀의 선포, 바른 성례의 집행, 치리’ 같은 기준을 제시한 바 있지만, 이것으로 결론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온라인 교회 쪽에서도 이미 이런 기준은 현실 교회만큼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설교는 유튜브로 보는 게 더 효과적인 것 같고, 치리는 교회를 떠나버리면 할 수 없는 것은 일반 교회도 마찬가지고, 그나마 성찬조차도 카톨릭 교회조차 온라인으로 하는 마당에 뭐가 안 된다는 말인가?


그러나 저자는 교회와 예배를 통해 기대되는 하나님과의 만남은 성경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성막과 성전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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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공간에서 이었던 경험들만의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특정 공간과 접촉을 필요했던 그런 경험들은 개인이 혼자서 느끼거나 추상적인 경험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하나님의 임재와 도전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지금의 교회도 특정 자리에서 사람들이 같이 모여 하는 경험은 여전히 중요하다.

또한 저자는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이 단순히 결과만을 경험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설교를 듣고, 치리를 통해 삶의 기준을 적용하고,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는 일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받고, 시각화’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저자는 기독교가 육체와 정신의 결합을 강조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기독교의 궁극적 목표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표현되는 개인과 자연, 정신과 육체 모두의 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실제 오감이 동원된 접촉 경험, 자신을 숨기지 않은 온전한 인격적 만남은 영적 깨달음과 나눔에 반드시 같이 가야할 요소라고 주장한다.

실제적인 만남, 온전한 인격적 접촉은 영적 깨달음과 나눔에 반드시 같이 가야할 요소, 가상현실로 대체될 수 없다

이 논문의 장점은 ‘온라인 교회와 예배가 진정한 교회와 예배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동안의 상투적인 답변들만으로 다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을 피하지 않는다. 특히 온라인 교회와 관련된 성경 주석과 주요 저서들의 답변을 소개하면서, 이속에 자주 발견되는 ‘치우침’ 문제를 조심하도록 격려한다. 저자는 온라인 교회와 예배를 무조건 악마처럼 여기는 태도를 반대한다. 왜냐하면 현실 교회와 예배가 제대로 해오지 못한 역할에 대해 반성이 있거나, 시대적 변화에 주목한다면 그런 반응은 대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저자의 이러한 도전은 단순히 온라인교회뿐 아니라, 사이버문화 전체가 던지는 도전에 관심을 돌리도록 이끈다. 다시말해 ‘인격적 만남이 없이도 인간이 성숙하고, 자라고, 사랑할 수 있을까?’ 가상현실이 아무리 더 현실적이 되어도, 가상현실 속에 깊이 뿌리박힌 단편성(앞뒤에 맥락과 분리해서 경험가능)과 익명성(참 자기 모습을 숨길 수 있는 여지) 때문에, 이 속에서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만나고 부딪힐 기회는 없다. 이런 만남이 없이는 깊은 고민과 갈등도 없고, 이를 통한 성숙과 깊은 사랑도 불가능하다.

더구나 성숙한 신앙에 따라오는 사랑과 봉사는 상대의 부족함이나 필요를 전제로 한다. 우리가 영적으로 가져야 할 긍휼과 영적 공감은 당장 눈에 어려움이 느껴지는 기아아동이나 전쟁난민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멀쩡한 가정도, 부유한 사업가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영적 권면이 필요한 존재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센세이션널리즘에 지배되는 가상현실로 이런 파악이 가능할까? 저자는 예수님의 성육신을 예를 들면서, 참 영이신 그리스도가 인간이 육체를 입고 와야 했던 필요에 주목한다. 직접 사람들의 고통과 아픔에 함께하기 위해 육체적으로 접촉할 필요를 보여주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가상현실에 더 익숙한 세대들을 위해선 가상현실기술은 더 활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상현실 속에 기생하는 ‘진정성 결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전통적 만남과 예배는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지금의 교회는 사람들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이웃과 부딪히며 자라가고, 물질과 정신이 따로 놀기 힘든 세상과 씨름하는 교회로 움직이고 있는가?

전체적으로 저자의 생각에 많이 공감되면서도, 두 가지 질문이 계속 따라오는 것을 외면하긴 힘들었다. 첫째, “지금의 현실 교회와 예배가 우리가 경험한 대면 모임의 기준일 수 밖에 없는데, 이것이 과연 가상교회의 더 낳은 대안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란 질문이다. 도리어 현실 교회와 대면 예배가 정신과 육체가 같이 변화되는 곳, 사람이 진정으로 서로를 만나고 섬기고 부딪히고 이해하는 곳으로 역할하는지에 대한 더 심각한 자성이 먼저가 아닌가?”란 질문이다. 매주 습관적인 예배 후에 형식적인 인사나 나누고 상투적인 성경 묵상을 통해 삶을 나누는 일에 익숙한 현대 기독교인들의 모임과 예배는 사실 온라인으로 대체해도 상관없지 않은가? 더 제대로 하는 교회와 예배를 만드는 시도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무슨 근거로 온라인 예배보다 대면예배가 낫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둘째, “가상현실이 기술의 발달로 점점 더 ‘다면적이고 진짜 현실처럼’ 되어가는 상황을 볼때, 단면성, 익명성도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때에는 우리가 뭐라고 또 답할 수 있을까?” 지금의 삼차원 안경으로는 설득력이 없지만, 기술이 더 발전하게 되면 교회는 더 모임과 예배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이 말은 이 논쟁이 단순히 ‘기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신학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신학이나 깊은 논리가 점점 더 인기를 잃어가는 교회내외의 현실을 방치한다면, 결국 지는 싸움이 될 공산이 크다.


결론적으로 이 글은 우리가 ‘제대로 사람들이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이웃과 부딪히며 자라가고, 물질과 정신을 하나로 모아주고는 그런 교회를 만들고 있는가?’라는 자문을 하도록 몰아간다. 새로운 사이버문화나 코로나 병균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원래 문제의 원인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김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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