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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주제 세관점: 파이퍼, 라이트, 레녹스의 코로나 관련저서 비교리뷰

최종 수정일: 2021년 8월 23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발발 후 교회 안팎에서 현 상황의 의미를 묻는 목소리가 많았다. 코로나 사태 초기였던 작년 2월, 미국 개혁주의 침례교 목사 존 파이퍼(John Piper)와 유명 신약 학자 엔 티 라이트(N. T. Wright)가 각각 책을 펴냈다. 이어 작년 4월에는 옥스포드 대학 수학과 교수이자 기독교 변증가 존 레녹스(John Lennox)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주제로 책을 출간했다. 이에 손민영, 이웅렬, 김석원 세 명은 각각의 책을 리뷰했으며, 손민영이 최종 정리했다. 학문적 글쓰기가 아니고 출처가 분명하기에 일일이 각주를 표시하는 수고는 하지 않았다. ─ 편집자 주

 

《코로나바이러스와 그리스도》, 존파이퍼 Christ and Corona-virus, John Piper


복음주의∙개혁주의 세계관의 장점과 한계 동시에 보여주는


코로나19 발발 후 사람들은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시대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고 있다. 존 파이퍼는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 중요하다.”라며 철학적∙정치적 고찰이 아닌 성경을 통해 답을 찾자고 제안한다.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 이것은 그가 의로우시고 선하신 분이시다라는 뜻이다.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가치와 아름다움과 위대함의 측면에서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선하시다는 것은 그가 관대하며 인간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위기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진짜 의롭고 선하신 분인지 질문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에도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선하심은 변함이 없다. 모든 일은 하나님 주권 하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코로나 바이러스도 결국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보내신 것이다.


존 파이퍼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재난을 통해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일 여섯 가지를 제시한다.


1.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비극은 모두 죄의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즉각 치유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도덕적 실패의 끔찍함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신다. 믿지 않는 자에게 이것은 형벌이지만 믿는 자에게는 성화의 과정이다.


2. 이것은 또한 특별한 죄에 대한 결과일 수도 있다. 모든 재앙이 항상 어떤 특별한 죄와 연결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섭리로써 특별한 죄를 다루실 수 있다.


3. 마태복음 24장에 나온 것과 같이 재앙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전조이며 산고이다. 이러한 재앙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곧 오시리라는 경각심을 갖게 한다.


4.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에게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만든다.


5. 코로나 바이러스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이 상황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원하신다.


6. 코로나 바이러스는 선교의 기회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해외 선교가 다 끝난 것 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준비하고 계신다.


존 파이퍼는 전적으로 성경적 관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를 다룬다. 그래서 복음주의 신학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새로울 것 없는 것이 사실이다. 사용되는 용어도 거룩, 의로움, 선함, 심판, 성화 등 익숙한 기독교 신학 용어를 사용한다. 다만 신학적 명제를 주장하기보다는 쉽게 설명하는 쪽을 택했다는 면에서 학문적이기보다는 목회적이다.


이 책은 당초 성경이 진리라고 믿고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다. 그래서 존 파이퍼의 설명은 믿는 자에게는 위로와 확신을 불러 일으키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다. 실제로 저자는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해 철학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누군가 존 파이퍼에게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설명을 요구한다면 그는 “우리는 최고의 계시인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답할 것이다. 한 편으로 존 파이퍼의 확고한 개혁주의 논리와 우아한 글쓰기에 매료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우리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 던져주는 질문들 ─ 이를테면 교회에 가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어떻게 상황을 설명할 것인가? ─에는 대답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복음주의∙개혁주의 세계관의 장점과 한계를 함께 본다. (손민영)

《하나님과팬데믹》, 엔티라이트

God and Pandemic, N. T. Wright


코로나 팬데믹은 ‘바빌론 유배기’


하나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선지자들에게 반드시 알려주신다는 말씀에 근거해 (아모스 3:7), 어떤 이들은 팬데믹을 원인과 결과적인 측면으로 바라본다. 즉, 팬데믹과 같은 상황에 미리 대처하지 못한 정부에게서 문제를 찾는다든지, 도덕적인 측면에서 해석하여 성적 타락에 대한 회개의 필요성을 제기한다든지, 아니면 또 다른 관점 예를 들어 생태계 위기 문제 등에서 찾는다.


하지만 라이트는 팬데믹의 정황을 단편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구약의 많은 스토리가 바빌론 유배 사건과 같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 관계 맥락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응징으로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나, 욥기의 결론은 하늘과 땅에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더 많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종말의 징조로 해석하는 이들에 대해서 라이트는 예수님 자신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징후요 비밀이며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것과(히 1:2), 악한 종의 비유(마 21:33-42)는 마지막에 보낸 아들 이외에 더 이상 메신저나 징후나 또 다른 경고가 없음을 말한다며 반박한다.


결론적으로 팬데믹에 대해 무엇이고, 왜 허용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시는가 하는 가에 대한 대답을 달려는 어떤 시도도, ‘병에 바람을 집어넣으려는 시도’ 같다는 것이다. 또한 선악대결 구도로 보는 것도, 악이 타당하게 허용되고 존재하는 장소를 가진, 그러면서도 질서정연한 우주를 그려보는 것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반면에 라이트는 창세기 1:28의 말씀에 주목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 나라 경영의 많은 부분을 우리에게 위임하셨고, 그럼으로 해서 그분은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할 위험을 감수하셨다. 따라서 현재의 팬데믹 상황을 세상을 옳게 다스리지 못한 우리의 책임으로 보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했던 것처럼 교회가 세상에게 해야 한다. 또한 산상수훈은 윤리가 아니라 사명이며, 크리스천들이 세상을 복원시키는 하나님의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 건물을 닫고 인터넷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교회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처가 아니라, 세상으로 가는 교두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신앙은 혼자서 동떨어져 하는 사유적인 것이 아니며, 인터넷 예배는 나홀로 신앙(Platonic worship)으로 전락해버릴 위험이 있다. 따라서 함께하는 공동체 신앙의 장소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팬데믹 시대에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가 하고 반문한다. 저자는 하나님은 바로 팬데믹 최전방에서 치유와 희망을 주시려고 안간힘을 쓰시고 있다고 답한다. 지금은 바빌론 유배기와 같은 시기이며 우리는 바빌론 강가에 있다. 이 타지에서 어떻게 주님의 노래를 부르며 희망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반문하는 이들에게, 라이트는 예루살렘을 잊지 말자. 그리고 여기 안주하겠다고 결정 내리지 말라고 촉구한다. 더 나아가 맘몬과 전쟁 그리고 성적 쾌락의 현 시대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당면한 현실과 앞으로 다가올 경제 현실을 애통해 하는 동시에, 새로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기도로써 세워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상처 입은 하나님의 세상에서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기근의 시기에 애굽을 구한 요셉과 같이 현 상황을 잘 진단하고, 새로운 치유의 정치와 정책들을 펼쳐 나갈 그 누군가라고 말한다.


라이트는 코로나 상황에 대한 진단을 종말의 징후나 사탄의 역사로 해석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해 주신 ‘세상 다스리는 권세’와 우리의 ‘자유의지와 죄성’에 따른 결과로 해석한다. 전적으로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시대를 ‘바빌론 유배기’로 정의한다. 개인적으로 이와 같은 통찰력에 대해 깊이 감사한다. 이러한 규정이 우리가 가진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바빌론 유배기가 지나면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이 예정되어 있기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은 이 어려운 난관을 헤쳐 나갈 힘이 된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도 영원한 본향을 그리는 것처럼 이 팬데믹 상황의 종료 이후를 그리며, 우리가 풀어야 할 산적한 숙제들을 지금부터 준비해 나가게 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교회란 무엇이며, 참된 예배 그리고 신앙 생활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정의해보고 더 나아가 자기 신앙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최근 인터넷상에서는 인터넷 예배에 대한 공방이 치열하다. 팬데믹 시기를 ‘바빌론 유배기’로 규정한 것은 인터넷 예배의 잠정적∙한시적 필요성을 말하는 것으로 적절하다고 본다.


더 나아가 산상수훈으로부터의 우리 크리스천들의 마음가짐과 사명 인식, 그리고 요셉의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와 의존에 기반한 국가 경영으로의 부름은 비단 이 팬데믹 상황에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언제라도 우리 크리스천들이 가져야할 덕목이고 사명이다.


이 책은 팬데믹에 대한 성경적 해석이나 신학적 고찰을 다루지는 않는다. 대신 이 힘든 현실이 왜 왔으며,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과 크리스천의 사회 참여를 촉구하는 책이다. 비록 그의 논거와 주장을 위해 발췌∙적용한 성경 구절과 해석 모두가 설득력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라이트는 올바른 해석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팬데믹 상황을 하나님이 맡기신 세상을 청지기로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세상과 자연을 착취한 결과로 이해하는 것은 비기독교인 및 무신론자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으며, 설득력 또한 있다고 본다. 한편 팬데믹이라는 이 아픈 현실을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신다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큰 위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비기독교인들은 과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드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한편 기독교만이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유일한 종교이고, 그분은 우리와 함께 울고 웃으면서 우리와 관계를 맺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에 기대 또한 걸어본다/ 이웅열


《코로나 바이러스세상,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레녹스(Where is God in a Coronavirus World, John Lennox)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


저자 존 레녹스의 책은 명쾌한 문장과 신학자가 쓴 글 답지 않게 신학 용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서 복음과 신앙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저자는 먼저 코로나로 인한 위기를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비신앙인들로부터도제기되는 종교적 위로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코로나 위기를 지∙정∙의를고루 동원해고난의 의미, 세계관의 문제, 더 나가서기독교 복음의핵심을 이해하는기회로 사용한다. 특히 그는 무신론적 답변에 내재한 윤리 부정의 결과를 경고하고, 과학자의 경험을 동원해 자연세계 안에 있는 (바이러스가 드러내는) 파괴와 생명의 떼래야 뗄 수 없는 상태를 지적하면서 이런 자연세계의 신비와 딜레마를 설명한 최고의 방식으로 기독교를 제시한다.


그가 말하는 그리도스도인은 ‘고난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고난을 당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게 된사람’이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왕관 모양과 가시 면류관의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일깨우기 위한 그분의 확성기”라는 C. S 루이스의 인용으로, 고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를 설명한다.


코로나 위기를 맞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네 가지 조언을 한다. 특히 과잉반응을 내려놓고 담담하게 위기를 처리하는 능력을 강조하는 부분과 이 땅이 전부가 아님을, 이생의 약속을 가진 이로서 담대함을 호소하는 대목에서는 이성적인 과학자가 보이지 않는 것에 소망을 두고 산다는 것이 어떻게 조화되는지 잘 보여준다.


기독교 변증의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보여주는 이 책의 백미는 맨 마지막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을 인용하며 우리의 답변들은 아직 ‘가리워진 것’들이 있음을 고백하면서 겸손하게 막을 내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가장 기독교에 호전적인 공격자들에게도, 이 책은 쉽게 무시되기 힘들 것 같다/ 김석원

 

비교


존 파이퍼는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설명을 시도한다. 성경에서 일관되게 발견되는 교리적 진리, 거룩하신 하나님, 섭리, 죄, 심판, 재림, 선교라는 키워드를 사용하여 이 문제에 대해 답을 주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인간의 죄와 관련이 있으며, 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의 원인이시며 이를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시다.


엔티 라이트도 성경에서 답을 찾는다. 다만 일관된 교리를 바탕으로 답을 찾기보다는 성경 속 사건과 이야기들을 비유로 가져와서 우리에게 적용한다. 그에게 있어 이 비극적인 상황을 교리에 끼어 맞춰 설명하는 것은 ‘병에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며 현실적으로 도움도 되지 않는다. 대신 라이트는 현재 크리스천의 상황을 바빌론 유배기로 이해하고 그 함의로부터 환경 문제, 온라인 예배 등에 대한 다양한 적용점을 탐구한다.

 권의 책은 마치 의도했던 것처럼 대척되는 부분이 많다. 파이퍼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교리적이고, 주지적인 설명을 시도했다면, 엔티 라이트는 직관적이며 실천적인 접근을 했다. 파이퍼의 글이 논리적이며 성경적이라면, 엔티 라이트의 글은 감성적이고 상황적이다.

앞의 두 권이 크리스천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면 존 레녹스의 책은 각 세계관을 비교하여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기독교적 설명 방법이 가장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레녹스의 책은 비기독교인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성경적이지만 교회 내부의 언어가 아닌, 일반 언어를 사용했기에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탁월하다.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서로 상관없어 보이기도 하는 세 책은 사실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작동한다. 존 파이퍼의 책은 악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성경∙신학적 틀을 제공하고, 라이트는 실천적, 실존적 질문을 던지며, 존 레녹스는 변증∙선교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존 파이퍼는 조직 신학적 접근을, 라이트는 실천 신학적 접근을, 존 레녹스는 선교학적 접근을 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신학교에서 이 세 가지를 모두 주요하게 가르치고 있다면 일반 기독교인들도 이 세 권을 모두 함께 읽어야 하지 않을까? / 손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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