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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신앙이야기: 미나리에 비쳐진 그리스도의 그림자

최종 수정일: 2021년 8월 22일


이민 1세대의 꿈

저마다의 ‘미나리’ 이야기가 있다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아칸소에서 한국 농장을 개척하려는 이민자 제이콥(스티브 연)과 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아버지로서 뭔가 해냈다는 성공담을 들려주고 싶은 제이콥의 마음은 비단 이민자뿐만이 아니라 모든 가장의 로망이다. 병아리 감별사인 제이콥은 온종일 병아리 똥구멍을 들여다보는 삶이 쳇바퀴 도는 것처럼 답답하다. 모든 것을 잃을 지라도 자기 손으로 농장을 일구는 데 목숨을 걸고 싶다. 한편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대도시도 아닌 시골 마을로 이주한 것도 낡은 컨테이너에 살게 된 것도 농장을 시작하겠다는 남편도 달갑지 않다.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바쁜 부부를 돕고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한국에서 찾아온다.


제이콥과 모니카의 고군분투하는 모습 속에 우리 부부가 살아온 지난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서 영화와 현실이 자꾸만 겹쳐졌다. 회계사였던 남편은 꽤 큰 규모의 호주 회사에서 회계사로 일했다. 워커 홀릭처럼 성실하게 일했지만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할 수 없는 이민 1세대 동양인이 올라갈 수 있는 지위는 한계가 있었다.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내가 맞벌이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남편은 자기 비즈니스를 시작해야겠다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자식들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주고 싶은 마음에 이민 1세대들은, 아니 모든 부모들은 제이콥과 모니카 처럼 발버둥친다.



땅을 일구어 기필코 농장을 만들어서 아버지로서 뭔가 해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제이콥. 농작물을 기르기 위해서는 먼저 물길을 찾아야 한다. 물길을 찾아 첫 삽을 뜨고 마침내 우물 바닥의 물을 찾아낸 제이콥이 아들 데이빗(앨런 킴) 앞에서 환호성을 지른다. 아이처럼 기뻐하는 제이콥의 모습에서 남편이 첫 가게를 오픈할 때 희망과 기대에 한껏 들떴던 모습이 떠올랐다.


제이콥을 비롯한 이 땅의 모든 가장들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계의 부담을 떠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가족에게 꼭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미나리> 속 대사를 거꾸로 뒤집어서 그들을 위로하고 싶다.

“맛도 없고 알도 못 낳아서 폐기되는 숫병아리들처럼 폐기되지 않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내 옆에 당신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미 당신은 충분히 애쓰고 있습니다. 원더풀입니다.”라고..

나는 예고편을 접한 뒤, 교사로 섬기는 한글학교 아이들에게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이 어떻게 호주에 오게 되었는 지 조사해 글을 써보도록 숙제를 내주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미나리’ 이야기가 있을 테니까..


<미나리>에 나타난 기독교적 요소들: 예수님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이중적 인물 ‘폴’


<미나리>는 영화 곳곳에 기독교적 색채가 가득하다. 보는 이에 따라서 기독교의 희화화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삶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이중적인 시선은 어쩌면 감독의 의도된 연출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한 이중성을 대변하는 인물은 폴(윌 패튼)이다.

마을사람들은 주일에 교회에 가지만 폴은 혼자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간다. 어깨에 큰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가는 폴을 보고 제이콥은 뭐하는 거냐고 묻는다. 폴은 “내 교회를 지고 간다”고 대답한다. 제이콥은 그런 폴을 향해 “미친 놈”이라고 말하지만, 그속에는 ‘어째 너도 나랑 같은 처지네’라는 동병상련이 느껴진다.


제이콥의 농장에서 일을 돕는 폴은 제이콥 가족이 아칸소에서 함께 식탁 교제를 하며 마음을 나누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outsider 폴은, 자기 땅에서 도리어 배척을 당하지만, 소외받는 자와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어 주신 예수님,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지 아니하셨던 예수님의 그림자를 비춰준다.

우리는 ‘미나리’ 같은 신자로 살아가고 있을까? 세상의 소금 & 중보자


<미나리>에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명대사가 많다. 그 가운데 성경 말씀이 연상되는 대사 하나가 눈에 띈다. 극에서는 여러 기능으로 쓰이는 ‘원더풀 미나리’라는 대사다.

“미나리는 잡초처럼 아무 데서나 막 잘 자라고 누구든지 다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다 뽑아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미나리는 김치에도 넣어 먹고, 찌개에도 넣어 먹고, 국에도 넣어 먹고, 미나리는 아플 땐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란다.

그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아무 쓸 데 없어 후에는 사람에게 밟히는 것과는 달리 미나리는 짠맛이 살아있는 세상의 소금 같은 존재다. 감독은 ‘미나리 예찬’을 통해 이 땅의 모든 디아스포라에게 당신들은 세상 어느 곳에서나 뿌리를 내리며 자라는 미나리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존재라고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떠한 이유든 교회를 떠나는 성도가 늘어가고 있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미나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자의 모습이 어떤 것 일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믿음이 연약해진 지체들, 예배의 자리에 더이상 보이지 않는 형제들, 교회를 손가락질하는 세상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친구들, 세속정치의 앞잡이로 전락한 교회와 타락한 목회자들에 시험 든 성도들, 이렇게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떠나는 이들… 그들을 바라보며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2) 

베드로의 배반을 아셨지만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연약한 지체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 같다.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미나리처럼 어떤 환경에서든지 믿음의 굳건한 뿌리를 내릴 수 있기를, 그래서 여러 가지 음식에서 맛을 내며 때로는 약으로도 쓰이는 미나리처럼 많은 열매를 맺게 되기를…


 

이주영 리뷰어는 이민교회 주일학교와 한글학교 교사로서 오랫동안 일해오면서, 문화비평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하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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