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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FLix 털기 2nd: DP/ 한 번도 경험하지 않았어도 모두에게 익숙한 이야기


오징어 게임의 열풍이 뜨겁다. 넷플릭스가 사업을 하는 모든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보도도 나왔고 넷플릭스 사상 최대 흥행작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너무나 한국적인 문화 상품에 전 세계가 큰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의 흥행 직전 전 세계의 이목을 끈 또 다른 한국 작품이 있다.


바로 DP이다. 이 작품은 2021년8월 27일 넷플릭스를 통해 총 6회가 전격 공개됐다. DP는 2015년 2월부터 레전 코믹스와 한겨레에 동시 연재된 김보통 작가의 웹툰 “DP, 개의 날”을 원작으로 한다.

이 6부작 드라마는 해외 리뷰어, 유튜버들의 전례 없는 관심을 끌었다. 많은 한류 팬들이 이 드라마에서 태양의 후예 같은 이미지를 기대했던 모양인데, 너무나 사실적으로 그려낸 한국 군대 문화의 어두운 면에 충격을 받은 이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한류가 많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 주면서 성공했다면 DP는 반대로 그 꿈에서 사람들을 깨워 내면서 성공을 거둔 셈이다. 실제로 K-Pop, K-Drama의 영향이 특히 큰 홍콩, 일본, 베트남 등 아시아 15개국에서 최고 순위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덕분에 해외 유명 언론에도, 한국군대의 인권문제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BBC는 김보통 작가가 인스타 그램에 올린 “DP는 상황이 나아졌다는 착각을 끝내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말도 소개했다. 작가에 의하면 이 드라마는 2014년 한국 군대를 배경으로 한다.


이 드라마의 충격은 군필자 중에서 시청 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를 일으킬 정도다. 그 동안 군대 배경의 작품이 한둘이 아닌데, DP만 유독 이러한 반응을 불러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차이가 있다면 대부분의 기존 군대드라마가 한국 남성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며 낭만적인 기억에 초점을 맞추는데 반해, DP는 군대를 전적으로 희망이 없는 암울한 곳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DP란 군무이탈체포전담조 (Desert Pursuit)의 약자인데 한국 군대의 경찰 격인 헌병 중에서도 탈영병을 영외에서 추적하여 체포하는 병사들을 뜻한다. 총 6회로 이루어진 DP 시리즈는 매회 각각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탈영병이 등장하고 탈영병이 체포되면서 각 에피소드가 마무리된다.


이 시리즈를 세 가지 모티브로 살펴보자.



첫 번째 모티브는 괴롭힘이다. DP에서 괴롭힘이 중요한 모티브인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다. 이 시리즈는 탈영에 대한 드라마이고 거의 모든 탈영의 이유가 괴롭힘이기 때문이다.


2화의 최준목 일병은 코골이가 심하다는 이유로 물이 차 있는 방독면을 쓰고 자야 하는 등 온갖 괴롭힘을 당한다. 오직 잠을 더 자기 위해 탈영을 한 최준목은 지하철 안에서 수면을 취하며 이동하다 체포된다.


DP에서 핵심캐릭터 중 한명인 조석호 일병도 괴롭힘의 희생양이다. 가해자들은 구타, 인격 모독뿐 아니라 “대공포 발사쇼”라는 이름으로 자위 행위를 강요하고 사타구니 주위의 털을 라이터로 태우는 등의 성폭력을 일삼는다.


이 드라마 최고의 빌런 황장수 병장은 제대하는 날 조석호에게 “형 때문에 고생 많았다. 좋은 추억도 나쁜 기억도 털자.”라고 말한다. 조석호는 가해자의 ‘쿨’함을 참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은 5화에서 조석호가 탈영하는 근본적인 계기가 된다.


더 큰 문제는 군대 내 괴롭힘이 일상화되고 대물림한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잠을 자다 체포된 최준목에게 어머니가 면회를 온다. 어머니는 “이제 새로 시작하면 돼, 너를 괴롭혔던 나쁜 놈들 재판도 하고 처벌도 하고” 그러자 최준목이 대답한다. “걔네들이 전과자가 되거나 영창에 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른데로 전출된다고.” 사병들뿐 아니라 한국 군대라는 시스템 자체가 괴롭힘의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더욱 더 아이러니한 것은 폭력의 최대 희생자인 조석호가 폭력의 가해자로 변해 간다는 것이다. 4화에서 조석호는 밤에 이등병들을 불러 내 폭력을 행사한다. 자신이 당했던 모든 말과 폭력을 그대로 후임병에게 반복한다. 모두가 눈 감고 있는 사이 군대내 폭력은 일상이 된다.

두 번째 모티브는 군대의 모습을 닮은 한국 사회에 대한 것이다. 1화에 등장하는 신우석 일병은 가혹행위를 참지 못해 탈옥을 한다. 하지만 탈영병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는데 신일병은 유흥가에서 보조원으로 일을 하며 삶을 유지한다. 신우석은 안준호에게 빌린 라이터로 연탄불을 켜 놓고 여관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데 이 사건은 안준호가 각성하는 계기가 된다. 드라마는 신우석이 자살한 이유에 대해 그가 군대에서 겪었던 가혹행위가 사회에서 똑같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피할 곳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안준호 역시 입대 전 이미 가혹 행위를 경험했다. 피자 배달을 하던 안준호는 잔돈을 주지 않았다며 인격을 무시하는 고객의 갑질과 밀린 임금을 주지 않는 사장의 횡포를 겪었다. 입대 후 겪게 되는 황장수 병장의 괴롭힘은 투박한 형태로 계속 이어지는 갑질에 다름 아니다. 제대한 황장수 병장이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겪게 되는 사장의 갑질은 군대 내 가해자였던 황장수가 세상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피해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왜 군대가 이 세상과 닮아 있는 것일까? 군대에서 의식화되고 교육받은 남성들이 세상을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인간 사회는 원래 부조리한 군대와 같다는 것일까? DP는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세 번째 모티브는 방관이다. 6화에서 황장수를 납치한 조석호에게 한호열은 “군대가 바뀔 수도 있잖아.”라며 자수를 권유한다. 이에 대해 조석호는 여전히 625때 만들어진 수통을 사용하는 한국군의 현실을 지적하며 “바뀌려면 머라도 해야지”라는 말을 남기고 자신에게 총구를 겨눈다. 전 시리즈를 통해 군대 문화를 바꾸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행된 유일한 노력이다.


여관에서 불을 피우고 자살한 신우석 일병의 납골당을 찾아 간 안준호는 신우석 일병의 누나를 만난다. 그녀는 안준호에게 동생이 군대에서 어땠느냐고 묻는다. 신일병이 착하가 성실했다고 대답하는 안준호에게 누나는 재차 질문한다. “그렇게 착하고 성실한 애가 괴롭힘을 당하는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요.” DP 최종회는 다른 모든 군인과 다른 방향으로 뛰어가는 안준호를 쫓는 카메라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최종회의 제목은 “Onlookers” 즉 방관자들이다.


한국의 20대 남성은 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군대에 간다. 그것을 병역의 의무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별로 자원하는 자리는 아니기에 군대에 “끌려 간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어차피 국방부 시계는 간다. 적당히 순응하고 버티다 제대하자.”

매해 수십만의 젊은 남성들이 약 2년 동안의 강력한 병영 생활의 기억을 가지고 사회에 쏟아져 나온다. 아까의 질문을 다시 던져 보자. 왜 군대가 이 세상과 닮아 있는 것일까? 군대에서 의식화되고 교육받은 남성들이 세상을 이렇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모든 인간 사회는 원래 부조리한 군대와 같아서 그런 것일까?


한국 사회는 군대를 닮았다. 그 곳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남성들은 20대 초반 군대에 가서 원래 친숙한 그 문화에 대해 더욱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은 같은 기억을 공유한 채로 제대를 하고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살아간다. 그래서 한국의 공무원 사회도, 직장도, 인간 관계도 심지어 교회도 군대를 닮아 있다.

얼마 전 한 대형 교회 목사님의 출근 장면을 티비로 보았다. “1호차 골목길을 돌았습니다.”라는 무전 소리가 들리고 곧 목사님이 중형 자동차에서 내린다. 목사님은 차렷 자세로 서 있던 사람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 뒤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예비역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사단장 부대 방문 장면 같다. 악수하던 사람들은 관등 성병을 복창했을까?


여성만 있는 사회라고 해서 이러한 군대 문화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간호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태움”이라는 문화는 사람을 교육하려면 괴롭혀야 한다는 가치관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넓고 깊게 퍼지고 뿌리내렸는지를 보여준다.


군대에서 상급자란 덜 일하면서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군대를 제대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그 “상급자”가 되는 것이 목표다. 책임 없는 권한을 갖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리더가 되면 사회적 책임을 다 할 리 없다.


군대의 삶을 체화한 사람들은 일반 사회 생활에서도 소위 “부적응자”들을 소외하고 배제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들은 소위 사회 부적응자들을 “고문관” 이라는 군대 용어로 지칭한다.

사회에서 뒤 쳐진 사람들을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돕는 일들에 대해 한국처럼 반대가 심한 선진국이 어디 있을까?


나는 한국 사회의 많은 모순과 문제들이 모든 남성이 강제로 군대에 가야하는 독특한 상황 속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DP가 제기하는 문제는 개별 사건에서 침해되는 인권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 한국 사회 구조적인 문제인 것이다.


필자는 크리스챤이라면 이러한 문화에 대해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고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양한 마리를 위해 나머지를 버려 두고 찾아 나섰다.

예수는 소위 창기와 세리와 같은 “부적응자”들의 친구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는 또한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러 오셨다. (마20:28) 이런 점에서 군대 문화와 기독교 가치관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많고, 군대 문화는 교회가 극복해야 할 것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드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필자 역시 PTSD를 느꼈다. 그런데 그것은 25년전 군대 경험 때문만이 아니다. 오히려 지난 25년간 DP에 묘사된 문화를 계속 경험해 왔다는 것을 새삼 발견한 충격 때문이다. 또한 군대도 세상도 생각보다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비록 방법이 거칠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조석호 일병의 마지막 말은 결국 옳다.


크리스챤은 방관자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누군가에게 있다면 그 것은 크리스챤이다. 이들은 의에 목마른 사람들이다. 절대자의 기준을 품고 늘 정의와 공의에 목마르다. 동시에 이들은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십자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보여 주었다.

잘못된 것을 보았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그 분처럼 겸손과 사랑과 희생을 통해 무엇이 옳은 것인지 선포하고 행동해야 한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말하듯이 말이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5-17)


손민영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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