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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madLand: 개인적 자유와 공동체에 대한 갈망의 긴장 속에 사는 우리의 모습


아마 첫 아이가 태어나고 부터였던 거 같다. 신학, 목회, 자녀 양육을 동시에 하다보니 늘 피곤했다. 혹시라도 영화관에 갈 기회가 되면 잠자기 일쑤였다. 끝까지 본 영화가 있었는지 기억이 별로 없다. 최근 들어 우연찮은 기회에 영화를 하나 보았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거라고 해서 일부러 찾아 갔는데, 영화를 다 보고 스스로에게 놀랐다.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어떻게 잠을 안자고 끝까지 보게 되었을까?

노매드랜드 Nomadland 는 작가 제시카 브루더 Jessica Bruder 가 수년동안 미 서부를 돌아다니며 방랑자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며 2017년에 펴낸 동명의 다큐멘터리 책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전문배우 대신 다큐멘타리에 등장하는 실제 인물들이 영화에 대거 출연했지만 Nomadland가 다큐멘터리 영화는 아니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클래오 자오 Chloe Zhao 감독(아래사진)이 주인공 펀 Fern을 비롯해, 일부 넌픽션으로 각색하여 제작했기 때문이다.

주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Frances McDormand (옆의 사진)는 다른 영화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에서도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다. McDormand는 이 두 영화에서 모두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두 영화 모두, 관객들이 재미있어 할 만한 요소가 별로 없어서 한국에서는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내가 이 재미없는 영화 두편을 끝까지 다 본 이유는 나이들어 뭇국을 좋아하게 된 이유와도 비슷하지 않나 싶다. 젊은 시절 찾던 재미보다는, 나이들어가는 자의 가슴을 건드리는 어떤 의미가 짙게 다가왔다고 할까..

황량한 잿빛의 메마른 대지, 때론 멀리 지평선 너머의 장엄한 듯한 석양, 가끔 날 것의 아름다움을 담은 미 서부 자연의 모습이 Nomadland의 줄거리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 밖에서 놀다 해질 녁 웬지 마음이 슬퍼질 때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서둘러 집에 돌아갔던 어릴 적 기억을 불러오는 순간들이 있었다.


카메라는 미 서부지역에서 고정된 집 없이 임시직을 찾아 떠돌이 생활을 하는 Nomad (이들을Workampers, vandwellers라고도 부른다)들을 주인공 Fern 의 시각을 따라 천천히 따라간다. Fern이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의 삶이 담고 있는 고단함과 아련한 바램이, 저무는 저녁 하늘의 장면들과 섞여 어릴 적 슬픔이 기억난 것 같다. Fern 이 방랑길로 나서게 된 것도 상황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남편과 함께 일하며 살던 네바다주 엠파이어시는 석고를 캐내는 광산회사 American Gypsum이 사업을 접으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우편번호마저 사라지는 폐도시가 되어버린다.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을 잊지 않기 위해 계속 일하며 Empire에 남기를 원했던 Fern 은 회사가 떠나고 도시마저 없어지는 상황이 되자 할 수 없이 중고 밴에 살림살이를 싣고 방랑생활을 시작한다.


Fern은 네바다를 떠나 계절단기고용직종 (아마존 물류센터, 사탕무 수확 시설, 캠프 싸이트 관리, 내셔날 파크 식당등)를 찾아 떠돌며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평생을 일하고 은퇴했지만 경제적으로 남은게 없어서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 초로에 접어든 이들이 대부분이다.

미국은 전 세계인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오고 싶어하던 dream land 였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Nomadland는 여느 할리우드 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든 미국의 한켠 민낯을 보여준다.

원작 Nomadland 의 부제 Surviving America in the 21st century 처럼, 하루 하루를 어렵게 생존해 내야 하는 이 시대의 미국인들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환상과 선입견을 깨고, 나아가서 인간 존재의 깊은 본질적 질문을 덤덤하게 던진다.


64세의 할머니 Linda May는 중고 지프차에서 지낸다. 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 가스를 틀어놓고 불을 붙여 모든 것을 날려보내겠다는 자살 계획 했다가, 곁에서 쳐다보고 있는 개들이 불쌍해서 실천하지 못했다. 린다는 Fern을 만나 새로운 일을 소개하기도 하고, 노매드들이 일년에 한번 모이는 Bob Wells의 캠프에 초대하기도 하면서 친구가 되어간다.

까칠해 보이는 다른 노인 Swankie는, 길을 떠도는 vandweller 에게 필수적인 survival skill을 Fern에게 전수해 준다. 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안남았지만 병원에 누워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면서 알래스카로 가겠다고 말한다. 가는 도중에 마지막을 맞이 하겠다던 말대로 Swankie는 Fern의 곁을 떠난다.


유목민을 뜻하는 Nomad 들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Fern 도 마찬가지다. Fern의 중고 밴에 문제가 생겨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감당할 수 없는 수리비가 나왔다. 고민 끝에 가족들과 유복한 삶을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여동생에게 돈을 빌리러 찾아 간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회포를 풀면서, 늘 언니가 곁에 있었으면 했다는 동생의 말에 미안한 맘을 전한다. 같이 살자는 동생을 힘겹게 뒤로하고. 빌려준 돈은 꼭 갚겠다는 말을 남기고 또 다시 길을 떠난다.

한 캠프 싸이트에서 Fern 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Dave를 만나게 된다. 그의 소개로 한 식당에서 함께 일하며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가는 중에, Dave의 장성한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온다. 곧 첫아이가 나오는데 이제 할아버지 역할을 해 주면 좋겠다며 자기 집에 들어와서 함께 살자고 하는 대화를 Fern이 듣게된다. 자신 없어하는 Dave에게 오히려 Fern이 강력하게 아들 집에 들어가서 함께 살라고 말한다. 그렇게 헤어지게 된 두 사람은 감사절 때에 Fern이 Dave를 방문하면서 다시 재회하게 된다.


Fern 은 Dave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일까? Dave는 물론 Dave의 아들과 며느리까지 온 식구들이 Fern을 따뜻하게 반긴다. 따뜻하고 풍성한 Thanksgiving Dinner Table에 Dave의 온 가족들과 Fern 함께 둘러 앉았다. 카메라는 마당에 바퀴가 펑크난 채로 세워져 있는 Dave의 Van을 비춰준다. Dave는 더 이상 namad가 아니다. 한 가족의 아버지, 시아버지 할아버지로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Fern이 그 집에 함께 하기만 한다면 완벽한 family 의 그림이다. Fern이 머물던 방의 침대는 너무 푹신하고, 거실에서는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2층 계단에서 조용히 내려다 보는 Fern은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Dave와 그의 아들을 발견한다. 모두가 잠든 밤, Fern은 몰래 빠져 나와 자기 밴에서 밤을 지새고 해뜰 새벽녘 다시 길을 떠난다.


Nomad들의 소망은 무엇일까? 정처없이 돌아다니며 사는 삶의 자유가 분명히 있다. 대부분 각자가 떠안은 힘든 부분도 없지 않지만,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길에서 만나 서로의 삶을 나누며 나름 회복과 치유의 삶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들은 최소한의 소유로 단순한 삶을 영위하며 자연이 주는 평안함을 가까이 체험한다. 실직, 은퇴, 노화, 사별을 거치며, nomad로 살아가지만 “덧 없는 인생” 이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안정이나 정착보다, 더 괜찮은 가치일지 모른다.


하지만 nomad의 삶이 인생 최고의 선택이라고 보기는 물론 어렵다. 최고의 자유를 즐기는 듯 보이는 Nomad의 삶이 매력적으로 비쳐질 수 있어도, 실제로 이들은 세상과 완전히 등지고 사는 것은 아니다. 기회가 되는 대로 이들끼리 모이는 공동체를 찾아간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공동체도 다분히 임시적이라는 점이다. Fern의 곁에서 가까이 지내던 Linda 나 Swenkie도 결국엔 다 떠났다. Fern 자신도 함께 살기를 원하는 여동생이나 Dave의 간곡한 제의를 마다하고 결국 홀로 떠났다.

이들의 삶 속엔, 자유를 향한 자기 중심적이고 타협없는 의지와, 늘 공동체를 원하는 갈망, 이 두가지가 팽팽하게 긴장관계를 유지한다.

집을 갖고 가족들과 함께 정착해 사는 이들은 이런 갈등이 전혀 없을까? 자녀양육에 지친 엄마들은 아이들과 남편 없는 곳으로 훨훨 혼자 여행다니고 싶다는 인생 버켓리스트를 품고 산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이와의 동행을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졸혼이라는 신조어는 어떤가? 떨어질 수 없는 끈끈한 가족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지만, 오히려 이것에 지친 이들이 갖는 어떤 자유에 대한 갈망의 표출 아닌가? 그런데, 평생 자녀 없이 사는 이들, 혹은 배우자가 없이 홀로 살아가는 이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Bob Wells의 캠프에 다시 방문한 Fern은 그에게 의미있는 말을 듣게된다. “One of the things I love most about this life is that there’s no final goodbye. I don’t ever say a final goodbye. Just, ‘I’ll see you down the road.’ “제가 이런 방랑자의 삶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영원한 ‘굿바이’가 없다는 것이지요.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저는 ‘이제 그만 안녕’ 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살다가 언젠가 또 만나자’ 라고 합니다” 언제나 자유롭지만 늘 떠나고 떠나보내는 이들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뿌리깊은 슬픔을 위로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good bye’를 거쳐왔던 Fern은 Bob의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와 공동체를 이루고 싶어했던 이들을 계속 거부했던 Fern. 아마 가졌다가 잃는 슬픔을 또 다시 겪게 될까 무서웠을까?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직업을 잃고, 거처마저 잃고 길로 떠돌수 밖에 없었던 한 인간의 두려움이 선뜻 새로운 공동체로의 회복을 주저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I will see you down the road. 이 말이 Fern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Fern은 자기가 살았던 네바다 엠파이어로 가서, 창고에 남겨두고 온 물건을 전부 처분한다. 마치 쌓아두었던 과거를 청산하듯. 폐허가 되어 먼지만 쌓여있는 과거 직장, 남편과 함께 살던 옛날 집을 천천히 돌아본다. 그리고 과거의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앞으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바램이 생겼는지 모른다. 아니면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겠다는 소망이었을지도.

집 없이 길을 떠도는 자들은 영화에 등장하는 Nomad뿐은 아니다. 잠시 왔다 가는 인생에 마음 둘 곳 없어 여기 저기 일시적인 것을 기웃거리며 살아가는 수많은 군상들이 엄밀한 의미의 방랑자들이 아닐지… 그런 힘겨운 삶에 지쳐 길을 떠도는 이들에게 진정한 소망은 무엇일까?

어떤 암시를 주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영화 제일 처음 Fern이 네바다를 떠나면서 차 안에서 잠깐 캐롤을 부르는 장면이 기억난다.


What child is this

Who lay to rest

On Mary's lap is sleeping

Whom angels greet with anthems sweet

While shepherds watch are keeping


마리아의 무릎위에 잠든 이 아기는 누구인가?

목자가 양을 지킬 때 천사들이 경배한 이 아이.


그 아이가 장성하여, 방랑자와 같은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기 전 이런 말을 남기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복음 14:1-3)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다. 2년째 판데믹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힘든 여정이지만,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이가 변치않는 영원한 소망을 약속하신다, I will see you down the road.



주진규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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