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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뒤져보기: 킹덤 아신전

최종 수정일: 2021년 9월 18일


줄거리 (스포일러 주의!)


킹덤 아신전은 남으로는 왜구의 위협이 증가하고 북으로는 파저위 여진족이 세를 확장하던 혼돈의 조선시대 북방의 끝 압록강 유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인 아신은 조선 땅에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살아온 여진족 가운데 “성저야인”이라 불리던 이들의 자식으로 이들은 여진족에게도 조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과 멸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 아신은 번호부락이라는 마을 공동체 족장의 딸로, 그들은 당시 가장 사회적으로 천대시받던 백정집단이다. 아신은 병환으로 죽어가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백년 간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폐사군안에 들어가게되고, 그곳에서 발견한 동굴안에서 불사초를 담은 내용의 벽화를 보게 된다.


​한편 여진족 '파저위' 부족 일행은 조선의 삼을 캐기 위해 “폐사군”으로 향했고 모두가 죽음을 당한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조선 최북단을 지키는 군관 민치록은 행여 이 사건이 여진족 무리가 규합하여 왜란으로 가뜩이나 혼란한 조선을 위협하는 불상사를 우려한다. 하여 그는 아신의 아버지 타합을 시켜 그것이 조선인이 벌인 살인사건이 아닌 단지 호환이라고 소문을 퍼뜨리지만 결국엔 모든게 탄로가 나고 만다.

그 결과 조선의 밀정노릇을 한 타합은 여진족들에게 손발이 잘린채 죽는날을 기다리며, 번호부락 사람들은 모두가 몰살을 당하게 된다. 조선사람에게는 천한 상것으로 취급받고, 동포인 여진족에게는 배신자로 치부되었던, 그러면서도 조선인으로 관직을 받는게 희망이었던 “성저야인” 그들의 최후이다.


아신은 이 모든 불행이 민치록을 비롯한 조선인과 여진족 때문이라는것을 알게 되며 생사초를 통한 복수에 나선다. 이제는 좀비가 되어버린 마을 사람들에게 아신은 절규한다. “조선 땅과 여진 땅에 살아있는 모든 걸 죽여버리고 당신들 곁으로 갈 거야”


왜 좀비물이 인기일까?


과거 공포물에 나오는 뱀파이어나 늑대인간들은 전율과 초능력을 갖는것에 대한 사람들의 로망스를 상징했지만 좀비가 된다는것과 같은 자극적인 면은 없다고 말한다. 당시엔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의 초능력으로 인해서 우리가 두려워했다면, 좀비의 경우는 우리 자신이 좀비가 될 수 있다는 음울한 사실에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늑대인간과 뱀파이어는 우리와 세상을 기꺼이 공유했지만 좀비의 경우는 다르다는 것이다.

킹덤아신전의 배경은 현대가 아닌 과거 조선 시대로 설정함으로서 관객에게 객관적 입장에서 공포를 즐기도록 했고, 왜구및 여진족등 외침의 위협이 증가하는데도 불구하고 권력의 중심(해원조씨)은 썩을대로 썩어있는 정치상황이 우리에게 충분히 이해되며, 여진족, 폐사군, 생사초등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에 기반하여 민치록의 “애국충정”으로 스토리를 전개한 것이 영화 흥행을 가져온 요소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왜 좀비가 영화나 게임등 문화컨텐츠 여러 영역에서 뿌리잡게 되었을가? 그것을 대중문화가 그 당면한 시대가 처한 환경의 산물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될수 있겠다. 오늘날과 같이 이상기후나 자연재해가 속출한다든지, 폭탄 테러리스트나 다국적 거대기업들이 더 이상 국가들의 권한밖에 있으며, 국제협약과 기구들이 유명무실한 것으로 보일때 이러한 좀비물이 유행한다는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다. 더욱이 코로나와 기후이변등으로 대변되는 오늘낭의 위기상황과더 나아가 종말에대한 우려까지도 생각해 본다면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쩌면 좀비는 현대를 사는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아이티 부두교주술사의 마술에 빠져영혼이 통제당한 채주술사의 노예처럼 일한다는그 좀비들과, 존 스토트가 '제자도'에서 지적했던 다원주의, 물질주의, 윤리적 상대주의, 외모 지상주의로 표현되는 이 시대의 세상 풍조를 따르는 우리들과 과연 그리 큰 차이가 있을까?

생명의 복음이 퍼져야할 이유


킹덤 아신전의 색상은 죽음색이다. 아신의 세계관은 냉소주의이며 허무 그 자체이다. 그녀가 원하는것은 절망에서 나오는 복수이며 죽음과 파멸일뿐 그 어디에도 희망이나 미래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저변엔 무엇이 있고, 그것은 우리에게 전하는 메세지는무엇일까? 민치록이 그녀의 요구에 응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민치록은 그렇게밖에 할수없는 이유가 나름 있지만 말이다. 민치록, 파저위 여진족, 아신의 행동은 그들 자신들만의 정당한 이유에 근거한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며 빛의 종교이다. 어두운 세상을 빛으로 인도해 내는게 복음이다. 썩어가는 세상에 소금이 되는게 우리이다. 기독교의 색상은 하늘과 진실을 말하는 푸른색이거나 봄으로 표현되는 파릇파릇한 초록색이다. 순수와 순결, 거룩의 흰색이라고 해도 좋겠다. 빛의 상징인 노란색도 맞겠다. 아뭏튼 죽음색과 대비되는 색인것만은 분명하다.


크리스천의 가치는 믿음 소망 사랑이다. 아신에게는이 세가지 키워드가 단지 “복수”일 뿐이지만... 영화는 우리가 어디에 있었고,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향할수 있는지를 말해준다.

영화는 우리에게 좀비가 되라고 떠다미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좀비됨을 거부하고, 좀비가 아닌 참 사람이 되어, 희망의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 말한다. 그런 소망과 믿음과 사랑이 남아 있느냐고도 반문한다. 그 물음에 우리는 무엇을 답할 수 있는가?

어떤 이유이든, 어떤 형태로든 세상은 하나님을 찾는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너희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그러한 질문에 접한 우리가, 그리고 교회가, 행여 생존을 위해 뒷좌석에 밀려나 나 혼자만의 안위만을 간구한채 웅크리고 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웅렬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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