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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editor

NETFLiX 털기 1st: 오징어게임리뷰/ from niche to major


한국이라는 배경


여태까지 한국 밖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와 문화는 niche 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일본의 ‘스시’만큼 익숙하지는 않지만, 아는 사람들은 아는 minor한 매력, 나만 알고 싶은 인디밴드 같이 특별하고 조금은 비밀스러웠으면 좋다 여겨지는 그런 문화였다.

언뜻 스쳐 들어본 먼 곳의 작은 나라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을테고, 화려하면서도 비굴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바로 그 점이 세계적인 열광의 불씨를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중 하나 지하철 역은 초현대적인 미래 영화를 보는 것만큼 단정하고 세련되어 있는데, 정작 주인공인 성기훈은 빛 바랜 흑백 사진처럼 세피아 감성에 물들어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빈부격차의 피해자, 사회의 끝자락에 버둥대는 삶을 적나라하고 처량하게 담아냈다. 마치 사람 사는 건 다 거기서 거기라는 듯이 말이다. 이렇게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면서, 오징어게임은 머나먼 작은 나라 한국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영상에서 진행되는 게임들은 한국 어린이들의 전통놀이로 이루어진다. 각 나라에서의 유니크한 버전이 있는 놀이들이지만, 추억의 회상을 통해 한국적인 색감을 입혀 나갔다. 어린이는 없는 어린이의 놀이에, 어린이는 참여하지도 이해 하지도 못할 피 터지는 처절한 경쟁이 겨뤄진다. 감독은 이를 통해 이 드라마가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졌는지 그 정체성을 끝까지 지켜 나간다.


사랑할 수도, 편을 들 수도 없는 등장인물들


‘오징어 게임’의 특징은 길지 않은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인물들을 다채롭게 그려낸다는 점이다. 그 중 성기훈과 조상우를 통해 감독은 인간내면의 더저 깊은 아래로 숨길 법도 한, 가장 처절한 탐욕과 잔혹함을 증폭시켜 화면에 담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감독의 짓궂은 으름장이 들린다 - ‘옳고 그름, 선과 악, 누가 더 나쁜 인간이고 좋은 인간인지 어디 한번 나누어봐라.’

냉철하고 이득과 불이익을 철저히 계산하는 조상우는 시청자가 판단을 내릴 때 마다, 미미하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인간적인 모습을 내비친다. 한국 사회에서 성기훈보다도 밑바닥으로 취급 받는 외국인 노동자 알리에게 전화와 차비를 내어주는 장면은, 극 초반에 시청자들의 판단력을 흐린다. 사람이 한번쯤은 실수를 할 수 있지, 그래 사실은 까칠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인가 보다. 감독은 이 딜레마를 거기서 놔주지 않는다. 그는 고독하지만 자신을 뒷바라지 해준 어머니만은 계속 걱정한다. 나름 염치도 있고 부끄러운 줄도 아는지 차마 얼굴을 내비치지 못한다. 그저 먼 곳에서 복잡하고 극 중 가장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 볼 뿐. 오징어 게임에 돌아가서 달고나 모양을 고를 때, 찰나의 순간이지만 고민하는 상우의 모습, 목소리까지 내면서 기훈을 붙잡는 그가 선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여지를 다시 한번 던진다. 후에 게임의 열기가 달아오를수록 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고 그가 뱉는 말들은 가시 같이 날카로워진다.

끝내 ‘아, 그는 인간다운 모든 부분을 상실했구나’라고 결론을 내릴 때쯤, 그는 양심의 무게를 안고 있었음을 자결로 보여주고, 아들로서의 책임감과 후회 속에서, 기훈에게 어머니를 부탁한다.

반면에 쓸모는 없어도 사람이 참 좋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성기훈은 ‘저 사람 저렇게 물러서 어떡하지’ 걱정을 시키다가도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치는 반전의 남자다. 경마에 미쳐 인생 한방의 꿈을 쫓는 듯한 도박중독자로서의 모습은 코믹하지만 그 내면과 직시해야 하는 현실은 가혹하다. 노름돈을 타는 순간, 사체업자들에게 끌려가 화장실에서 매몰차게 맞는 그는 아들로서도, 아빠로서도 책임감을 상실한 듯 보인다. 딸의 생일선물을 사기 위한다고 하기에는 그는 경마의 유흥을 격하게 즐기고, 그래도 아들이라고 최선을 다해 돌보는 노모의 가슴에 못을 박는 짓이 익숙하다 못해 무디어져 있다. 그에게도 물론 나름의 사연이 있지만,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과거의 사건을 떨쳐내지 못하고 성장은 커녕 철이 들지 못한 모습은 상우에 비해 더할 나위 없이 유약하지만 인간 냄새가 난다.

그는 오징어 게임 내내 긴장을 늦추 지도, 감정을 숨기지도 못한다. 눈빛은 불안하게 떨리기 일수고, 언제든지 상금을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매순간 최선을 다한다. 그 최선은 구슬치기에서 극중 내내 극진히 돌보고 함께했던 오일남을 속이고 져버리는 행동까지 이르렀다. 패배의 끝은 죽음 임을 알면서도, 기훈은 자신에게 선하게만 대했던 이의 병을 이용해서, 애초부터 정직함이 뭔지 모르는 사람처럼 군다. 게임에 질 위기에 처하자 도리어 화를 내기까지 한다.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부탁했던 상우와는 반대로, 마지막까지 딸을 저버리고 미국 행 비행기를 타지 않는 기훈은, 인간이 착하기만 해서는 안된다의 표본이 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어그러진 그리스도인의 모습


한국 사회를 최대한 다양하게 담아내는 것이 감독의 의도라면 그리스도인은 아마 빠트릴 수 없는 캐릭터였을 것이다. 초대부터 그래왔듯이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교회는 온 세상의 관심을 받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최근에는 부정적인 이유로 더 많이 집중을 받고 있다는 것. 그로 인해 극 중에서 기독교인으로서는 보기에 불편했지만 강렬했던 부분들이 있다. 낭자한 피와 폭력성, 인간의 잔혹함을 통해 보여지는 죄성에 대한 모습은 둘째 치고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을 극도로 왜곡해서 담아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먼저는 기독교인 참가자로 그려진 244번이다. 말의 앞뒤도 맞지 않고, 스스로 유리한 대로 하나님을 가져다 쓰는 그는 외형도 비호감인 머리가 벗겨지고 있는 중년 아저씨. 광기어린 그의 모습은 보고 있는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리고 그는 어떠한 희생도 거부하며 혼자 살아남으려고 하나님을 이용하다 죽게 된다. 비정상적인 행동과 광기가 번뜩거리는 그 눈빛은 기독교의 본질을 모두 상실했다. 세상이 바라보는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무서운 존재였는가, 마음이 무거워진다.

더 나아가 주연급 임팩트를 가졌던 지영은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만행을 공개하며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다. 교회 목회자와 관련된 여러 성 스캔들을 모티브로 가져온 것일까? 지영이 담담하게 풀어내는 목사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삶이 불행을 넘어 기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했던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그녀에게 지옥보다 더한 불 구덩이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위선적이고 비인간적인 목회자에게 고통받았던 그녀의 마지막이 한편으로는 희생과 배려를 담은, 그나마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감독이 그녀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하고 강렬하다.


여기서 우리가 고민하고 넘어가야하는 점은, 세상이 기독교를 바라볼 때 갖는 위와 같은 왜곡된 시선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이다. 단순히 화를 내며 단호하게 반대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잘못이라고 시인하면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면 되는 것일까?


감독이 그려내고 싶었던 어그러진 기독교의 모습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극의 마지막에 다다를 때까지 그 의도는 흔들리지 않는다. 게임을 우승한 기훈이 도로 한복판에 내동댕이 쳐졌을때 길거리 전도를 하고 있던 그리스도인은 뱀 같은 눈빛으로 기훈의 상태를 묻기도 전에 전도를 시도한다. 전도에 열중한 나머지 기본적인 사람으로서의 도리도 챙기지 못한 넌더리 나는 모습이다.


우리는 왜곡되었지만 진실이 담긴 이 현실 속에서 진리와 사랑을 더욱 붙들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잘못되었다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흥행하는 드라마 속에 그려지고, 또 널리 퍼지게 될 어그러진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기억하고, 경계하며, 또 다짐해야 할 것이다 - 현실판 244번이 되지 않기 위해.


돈과 죽음, 그리고 사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필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문화사회와는 거리가 먼 한국이지만 그 중에도 각양각색의 참가자들을 끌어 모아 놓은 것에서 분명한 감독의 의도다가 엿보인다. 누구든 돈은 필요하고, 또 돈에 쫓겨서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다. 개천에서 용 난 엘리트도, 탈북한 소녀가장도, 큰소리와 핵 주먹이 특기인 조폭도 돈을 탐욕하고 돈 없이 살기를 거부한다. 목숨을 건 사투를 기꺼이 감내한다. 극에서 그려지는 돈의 값어치는 딱 그만큼이다. 사람의 목숨 값. 그 값은 자신의 목숨에서 그치지 않는다. 타인의 목숨도 자신의 돈을 위해 기꺼이 취한다. 망설임은 그저 스쳐가는 찰나의 바람이다.


대회의 첫 게임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때까지 만해도 참가자들은 게임에서의 탈락이 죽음이라는 걸 모른다. 첫번째 탈락자가 총을 맞고 쓰러진 직후에 상황이 이해가지 않지만 무언 가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잇따라 눈 앞에서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다. 겁에 질려 허둥지둥, 영문을 모른 채 그저 그 곳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그 발버둥이 오히려 죽음을 빨리 불러온다는 이성적인 생각은 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이미 궁지에 몰려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은 모두 돈의 절대적 힘에 이미 한번 좌절하고, 공포에 떨며 삶의 끝을 상상했던 경험이 있다. 투표를 통해 극적으로 이 대회에서 빠져나간 뒤, 다시 돌아오게 되는 참가자들이, 그 절박함이 그 증거다. 한발자국 물러서서 보면 감독은 그저 정신나간 사람들의 광기를 표현하고자 하지 않았나 고민해본다.

결국 사람이라는 존재는, 절대적인 권력 앞에서 누리고 살아왔던 모든 것들을 잃어버린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최소한 지켜야 하는 생명의 소중함, 선,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지만, 돈이던 죽음이던, 피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공포는 이 모든 것들을 사람으로 하여금 내던져버리게 만든다.

메이저 리그 입성

오징어 게임은 전세계 앞에서 한국을 알렸다. 때로는 담백하게, 때로는 광기를 가득 담아서. 화려하고 정갈한 그림과 자연스럽게 녹여낸 연기, 그 내면에는 오늘 날 이 땅을 살아가는 모두가 경험하고, 이해하고, 살아내고 있는 것들로 가득했다.


오징어 게임은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다. 살아 있다면 모두에게 잠재 되어있는 필사적인 발악을 내숭 없이 증폭시켰다. 거기에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이라는 감미료를 첨가해 대형 스크린을 가득 매웠다. 그럼으로 감독은 흔히 말하는 사이다를 선사하고, 보는 이로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민주홍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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