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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editor

다시보는 영화: "쇼생크 탈출"의 신앙고백

최종 수정일: 2021년 8월 22일




빛과 어두움,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의 선택 앞에서 무엇을 선택 할 것인가?


너무 뻔한 답이 나온다고 느껴지는가? 그러나 종신형 선고를 받은 죄수라면 어두움 가운데서 희망을 선택하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우리는 구원의 감격은 어둠이 깊을수록 더 크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 영화가 가진 ‘영적 도전’은 영화의 영어 제목에서 더 잘 드러난다. 원작명 ‘The Shawshank Redemption' 의 직역이 쇼생크 구원 혹은 회복이기 때문이다. 이 제목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감상하면, 영적 도전을 더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다


1994년에 개봉된 이 영화는 같은 해 개봉된 흥행작들 때문에 당시에는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이후 비디오로 출시되면서 전 세계 관객들이 뽑은 인생 영화 1위로 인정 받았다. 아마도 영화가 제시하는 구원이란 주제가인간 내면에 울리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유가 없는 곳에는 희망도 없다/ 희생을 통한 구원 경험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희망이다. 희망은 인간에게 자유를 가져다주고, 자유한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며, 그 선택을 통해 인간은 가장 가치 있는 존재가 된다. 쇼생크 감옥에서는 이런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선택의 자유는 없었다. 밥을 먹으라면 먹고, 씻으라고 하면 씻고, 화장실을 가라 하면 가는, 수감자들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이 상실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자신의 이름마저도 번호로 불릴 뿐이었다.


여기에 성공가도를 달리던 부은행장 출신의 젊은 인재, 앤디 듀프래인이 쇼생크 감옥으로 들어온다. 그는 아내와 정부를 죽인 혐의로 종신형을 두 번 선고 받았지만, 자신은 범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앤디는 아무 희망이 없는 그곳에 들어와 위대한 선택들을 통해 수감자들에게 기쁨을 선물한다.


동료들에게 자유인처럼 밝은 태양 아래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게 해 주고, 6년간의 노력 끝에 감옥 내 도서관과 음악 감상실을 설치할 수 있게 만들고, 젊은 죄수의 검정고시를 위해 공부를 가르치고, 간수들의 세금 신고를 도와주는 등, 자신의 유용함을 끊임없이 보여주지만, 도리어 이 때문에 그는 큰 곤욕을 치룬다. 하지만 앤디는 아무 희망이 없는 그곳에 자기를 기꺼이 희생해 희망을 공급하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현실의 벽을 넘어서는 선택

영화의 감동은 세 명의 주요 등장인물인 앤디와 레드,그리고 브룩스를 통해 각인된다. 레드와 브룩스도 종신형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서 각각 40년, 50년간 지낸다. 레드도 감옥 안에서 못 구하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유능한(?) 죄수였고, 브룩스 역시 오랜 수감생활의 노하우(?)덕분에 이곳에서 누구보다도 잘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브룩스가 50년만에 가석방이 되어 세상에 나오게 되자, 그가 다시 접하게 된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 있었고, 바깥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사로잡는다. 무엇보다도 일상 생활에서 모든 선택과 결정을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 그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I don’t like here. I’m tired of being afraid all the time I’ve decided.’

결국 브룩스는 낯선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 하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여기에 비교되는 인물이 레드다. 앤디가 탈출을 성공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도 40년 만에 가석방이 되어 세상에 나온다. 레드가 머물게 된 숙소와 일터가 브룩스와 같았다는 설정은, 이들이 닥친 같은 충격을 잘 드러낸다. 레드 역시 변화된 세상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이때 앤디가 쇼생크를 탈옥하기 전날에 했던 말과 약속을 떠올린다.

"두려움은 너를 죄수로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바쁘게 살든가, 바쁘게 죽든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나는 바쁘게 살기를 선택할 것이다” , ‘희망은 자유를 주고, 자유는 선택을 준다',

그리고 묘연한 한마디 '태평양 연안에서 만나자' 역시 레드를 브룩스와는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든다. 앤디는 두려움을 떨치고 평생 처음으로 희망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통해 자신을 가두던 제한들을 벗어 던지고, 앤디가 숨겨 놓은 보물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결국 레드는 앤디가 꿈에 그리던 태평양 바닷가에서 앤디와 재회하게 되고 영화는 마친다.


세상의 요구 앞에서 두려움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마치 영화 속의 쇼생크가 아닐까 하는 생각해 본다. 세상은 우리에게 세상 방식대로 살라고 요구하고, 그 방식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거스르면 따르는 고통 때문에, 꼼짝 없이 세상이 원하는 방식에 따라, 선택에 여지가 없다는 느낌으로 살아 가는 게 우리 모습일지도 모른다.

죄 없던 앤디가 쇼생크라는 감옥에 들어와 절망 속의 죄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 그 곳을 떠나는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린다. 바로 이 때문에 “쇼생크 탈출” 속에서 나는 소망과 구원, 선택과 자유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열어 주신 구원의 문 앞에서,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이제 열려진 구원의 문은 그리스도 안에서 소망을 품은 자만이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레드의 고민처럼, 우리도 현실 속에서 소망을 품는 결정을 하기란 솔직히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약속을 기억한다면, 소망은 우리의 것이 된다.


심사 장면 속에 레드에게 비춰진 우리의 모습


영화의 전체 흐름은 세 번에 걸친 레드의 가석방 심사 장면으로 연결된다. 그는 수감생활 20년째, 30년째, 그리고 40년째때 심사를 받는다. 그러나 석방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품었던 앞의 두 번의심사는 좌절감만 안겨 준다. 수감 40년째 다시 찾아온 심사에서, 레드는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심사위원들에게 답변한다.


(당신은 자신이) '교화되었다고 생각 합니까?'

오래전 바보 같은 어린 녀석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도 이젠 해 줄 수가 없습니다. 그 젊은 놈은 오래 전에 없어졌고 지금은 이 늙은 놈만 남았습니다. 쓸데없이 나의 오후 시간을 뺏지 말고 그냥 돌아가십시오

앞의 두 번의 심사에서 그는 자신을 적극 변호했지만 희망은 절망이 되었고,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단념한 상태였다. 그러나 앤디를 통해 ‘세상이 요구하는 희망’을 거부하고, 자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담담함 속에서, 심사관들은 오히려 감동을 받고 레드의 석방으로 이어진다.


레드 같은 우리에게 세상이 요구하는 희망을 거부하고 현실을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어디서 찾아질까? 우리의 죄성과 소망을 가장 잘 드러내신 예수님께 나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여기에는 두려움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세상이 말하는 평가와 주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 … 하지만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소망과 기쁨 그리고 자유의 영역은 더 커진다. 바로 이것이 내가 예수를 믿는 진짜 이유기도 하다.

 

김정근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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