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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editor

영화로 본 인간: 호주영화 드라이가 그리는 인간 죄성

최종 수정일: 2021년 8월 22일


말라가는 대지에 갖힌 말라버린 영혼들


영화 “드라이”는 광활한 대지를 먼지 바람으로 덮어버리는 가뭄처럼, 인간의 죄성에 의해 갈라지고 황폐하게 된 인간의 현실, 그리고 죄의 결과에서 영원히 피할 길이 없음을 잘 드러내는 영화다. 영국계 호주 작가의 유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주정부 영화부서에서 지원해 만들어진 영화들이 그렇듯이, 소박하고 원시적이기까지 한 호주 환경을 배경으로 이야기의 힘을 가장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직관적인 사건 전개로 진행된다. 여기에 산만의 여지가 없을 만큼 집중적인 카메라의 포커스 앞에서, 여과없이 드러나는 호주 배우들의 연기력이, 너무나도 단순한 사건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모든 것들을 드러낸다.


이 영화의 배경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시골 마을 케와라, 이곳에 젊은 농부루크가 아내와 아이를 죽이고 자살한다. 영화의 시작은 루크의 옛 친구인 연방경찰 폴크가 장례식을 위해 고향에 갔다가 루크의 부모님의 부탁으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면서 시작된다. 죽은 루크의 아내가 남긴 메모에서 ‘그란트’란 이름이 발견되고, 루크의 농장을 탐내고 있었던 ‘그란트’가 용의자로 의심을 받는다. 그러나 그란트는 폴크가 살인자로 의심받아 그 마을에서 쫓겨나게 된 원인이었던 죽은 엘리의 오빠였기에, 사건을 팔수록 폴크의 옛 상처들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의외로 실제 범인은 폴크에게 가장 교양 있게 대했던, 이 마을과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교장 휘틀럼으로 밝혀진다. 노름빚에 몰린 그가 학교 지원금 (그란트)을 사취하는데, 그 사실을 루크의 아내가 밝혀내자 살인사건을 벌이고, 이를 모두 루크의 행위로 뒤집어씌웠던 것. 이 사실을 밝혀낸 폴크는 과거 친구들을 생각하며 엘리가 죽었던 냇가로 갔다가, 엘리의 가방을 발견하고 엘리를 죽인 것이 엘리의 아빠이자 오랫동안 그녀를 학대했던 엘리의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다시 마을로 향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세가지의 배경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여러가지 메시지를 우리에게 도전한다.


오랜 가뭄으로 황막해진 대지는, 개척정신과 기술 발전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자연세계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뭄은, 호주에서는 화석 연료 문명시대의 부작용을 말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 대자연의 제약을 보여주지만, 그곳에서 벌어진 ‘토지 매매’에 대한 이해 갈등은 환경문제도 결국 이를 통해 반응하는 인간에 의해 더 큰 모순과 문제, 갈등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런 광활한 대지에 소박하게 놓인 마을은 인간이 그동안 보여준 모험심과 용기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모이면 생기는 모순, 특히 자기 죄악을 감추기 위해 희생양을 세우는 데 거리낌 없는 인간 군집의 민낯을 보여준다. 지금도 세계 수많은 곳에서 우리 인종, 우리 가족, 우리 그룹을 앞세워 벌어지는 셀 수 없는 차별과 폭력이, 이 한심할 만큼 아무것도 남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 마을에서 장례식이 벌어졌던 교회가 이들의 삶과 가치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가 별로 기독교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까?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교회와 신앙에서 말하는 사랑과 은혜가 노예제도, 백호주의, 인종차별이라는정치적/ 사회적 통념이나 경제적 이해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것을 얼마나 자주 경험했던가. 그나마 장례식장이라도 제공해 개인들을 위로해 준다는 정도로 만족해도 되는 것일까?


이 영화는 몇몇 등장인물의 묘사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버지에게 억울하게 희생된 엘리와 그 희생양으로 마을에서 도망가야 했던 폴크, 그의 탈출은 결국 남은 모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마을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축복이었다. 그런 사건이 있도록 자신을 이용했던 친구, 루크의 죽음 앞에서 그의 억울함을 푸는 과정이 자신과 엘리에 대한 진실 규명으로 이어지면서, 한 인간의 삶에서 성공과 실패의 구분이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한다. 동시에 폴크에게 가장 친절했던 교장 위틀럼이 루크를 죽인 당사자였다는 사실은, 인간의 겉모습과 교양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죄의 본질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기독교나 신앙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지만,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아픔, 갈등, 모순들은 우리가 가리고 싶어하는 인간죄성을 잘 보여주는 예화 역할을 한다. 그냥 보기에는 불편할 수 있지만, 우리 손으로 해결 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직접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창조자의 사랑을 알기에, 이 영화는 은혜를 더 분명히 보게 하는 ‘눈’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석원 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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